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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공예 ‘낯선 아름다움’을 비추다

19.06.2026 1분 읽기

조선 말 한성을 찾은 미국 수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은 고종에게서 모자를 선물받았다. 고향에서 쓰던 중산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소재가 판이했다. 가느다란 말총으로 몸통을 엮고, 안쪽 윗부분엔 한지를 학 무늬로 오려 붙였다. 로웰은 자신의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새로운 종류의 모자, ‘하이브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적었다. 이는 당시 조선의 변화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조선에선 단발령과 함께 상투를 자르면서 전통 갓이 필요 없게 됐고 여기에 서양식 모자를 접목한 것이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선 이를 거꾸로 뒤집은 창작 활동이 일어났다. 1890년대 말 프랑스 국립 도자 제작기관인 세브르제작소는 프랑스로 들여온 고려청자 등에서 영감을 받아 단순화된 형태에 최신 플람베(Flambe) 유약 기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도자’를 만들었다. 세브르제작소는 여기에 한국 도시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테면 ‘서울 화병’ ‘부산 화병’ ‘울산 화병’ 식이다.

로웰의 서양식 말총 모자와 세브르제작소의 도자기 등 개항기의 이색적 공예 문화를 조명한 특별전 ‘더 하이브리드’가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공예박물관 측은 “근대화 시기 서구 문물이 유입된 뒤 전통 공예 재료와 제작 기법은 근대 서양의 복식 및 가구, 소품 등과 결합했다”며 “이러한 ‘전환기 공예’는 세계와 교류하는 매개이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 언어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대한제국이 외국 사절에 선물로 줬거나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공예품 등 108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종이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린 미국 교육자 호머 헐버트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나전 칠 길상무늬 삼층장’과 1899년 당시 황태자였던 이척(순종)이 영국 총영사 존 조던의 부인에게 선물한 ‘은제 컵홀더’ 등이 눈길을 끈다. 헐버트의 삼층장은 높이가 1.75m에 달해 서양 건축에 맞춰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환기 공예품에는 ‘근대 자주국으로서의 정체성’이 담긴 사례도 적지 않다. 고종과 고위 관료들이 입었던 서양식 군복과 예복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무늬 단추가 달려 있고, 국가를 나타내는 무궁화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다.

프랑스에 K도자기가 널리 알려진 것은 초대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53~1922)의 수집열 덕이 크다는 점도 전시를 통해 부각됐다. 조선에서 13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플랑시는 25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이를 세브르도자박물관을 비롯한 주요 프랑스 국립기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엔 플랑시가 고종에게서 하사 받아 세브르도자박물관에 기증한 ‘백자 청화 용무늬 항아리’ 등 보물급 유산들도 함께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에선 조선에서 건너간 도자기가 유행하면서 K스타일 도자기가 활발히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 나온 ‘하이브리드 도자기’들은 당시 프랑스 세브르 제작소의 작품이다.

전통의 교류를 되새기는 자리에 현대 설치 작가의 작품도 동행해 의미를 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패로딘이 태극과 사괘의 원리를 바탕으로, 그만의 기하학적 추상 작업에 근대 도자의 진열 구조를 결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7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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