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일
논설위원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평생 수많은 적을 물리쳤지만 끝내 이기지 못한 상대가 있었다. 바로 탈모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이마와 정수리 부위의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설에는 승전의 상징으로 그가 즐겨 쓴 월계관도 머리숱이 없는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도 탈모를 감추기 위해 수십 개의 가발을 맞춰 썼다. 이 영향으로 유럽 전역에 가발 유행이 퍼져 하나의 산업을 탄생시켰을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탈모다. 다만 과거에는 개인의 콤플렉스로 여겨졌던 탈모가 이제는 정신 건강과 사회생활, 취업 경쟁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질환으로 인식되면서 정책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2030 청년층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하반기부터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착수하고 다음 달 공청회도 연다고 한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도 몇몇 단체장 후보들이 탈모 지원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난 5년간 탈모로 진료를 받은 누적 환자는 120만 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40대가 22%로 가장 많고 30대(21%)와 20대(16%)를 합치면 2030세대 환자가 37%나 된다.
젊은 남성의 경우 탈모가 자신감 저하는 물론 결혼이나 취업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과 정책은 다른 문제다. 올해 5조 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건강보험이 중증 환자들에 대한 지원도 버거운 상황에서 탈모까지 끌어안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곱씹어볼 일이다.
정부의 탈모 지원은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한 선별 지원이 합리적이다. 중장년 탈모인이 더 많은데 단지 젊다는 이유로 수혜 대상이 되는 것도 역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탈모 지원 공약은 자칫 청년 표심을 겨냥한 ‘모(毛)퓰리즘’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울 우려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