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이탈리아 국빈 방문을 계기로 12일(현지시간)열린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실제 산업 협력으로 구체화하는 무대로 손색이 없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방산, 에너지 인프라, 바이오·뷰티 산업에 이르기까지 양국 기업들은 이미 진행 중인 협력 사례와 신규 사업 구상을 공유하며 경제협력의 외연 확대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이날 로마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BRT에서 “AI 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 공급망 재편으로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기술, 인재, 공급망 네트워크가 기업의 경쟁력과 산업 기술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두 나라는 그야말로 최적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며 “힘을 합치면 하나 더 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훨씬 이상일 것”이라고도 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도 “근대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나라로 원천기술 강국인 이탈리아와 첨단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은 시너지 가능성이 큰 파트너”라고 화답했다.
우주·방산 협력 확대…“글로벌 시장 함께 간다”
가장 눈길을 끈 분야는 우주항공과 방산분야 협력이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탈리아의 대표 우주기업인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이탈리아와 협력을 통해 글로벌 위성 시장 공동 진출 계획을 공유했다. 양국의 위성 기술 역량을 결합해 제3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KAI는 또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의 핵심 부품인 동력전달장치 국산화를 위해 이탈리아 기업들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순 부품 조달을 넘어 공동 연구개발과 기술 내재화 단계로 협력이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로 세계 3번째 인공위성 발사국인 이탈리아와 협업을 통해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LS, 유럽 전력망 시장 확대…에너지 전환 수혜 기대
에너지·인프라 분야에서는 LS그룹의 협력 사례가 주목받았다. LS는 2014년 비유럽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영 송전회사 테르나(TERNA)의 전력망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최근에는 8000만 유로 규모의 가공 송전선 프로젝트를 추가 수주했다. LS는 이날 이탈리아 연구개발(R&D) 센터를 거점으로 유럽 에너지 전환과 전력망 현대화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유럽 전역에서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면서 전력 수요와 송배전 인프라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노후 전력망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거론된다.
HD건설기계 “통상 장벽 완화 효과 체감”
정상외교가 기업 활동 여건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도 소개됐다. HD건설기계는 최근 이탈리아 정부가 초감가상각제도 적용 과정에서 유럽연합(EU) 역내 생산품에만 혜택을 주던 제한 조항을 삭제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 역시 한·이탈리아 기업 협력 촉진의 한 예로 초감가상각제도를 언급했다. 이탈리아의 초감가상각제도는 투자액을 대폭 반영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로 도입 초기 적용 대상을 유럽연합(EU)산으로 한정 지어 한국 기업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지난해 1월 한국을 찾은 멜로니 총리께 한국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전달드렸다”며 “이탈리아가 기민하게 대응해 불리한 요건이 해소됐다”고 감사를 표했다.
양국 정상 간 의견 교환으로 반년도 안 돼 기업의 불리한 요소가 제거된 것에 대해 HD건설기계 역시 “양국 정부의 노력으로 한국산 건설기계의 현지 진출 여건이 개선됐다”며 “스마트 장비 등 혁신 제품을 지속 제공하고 양국 건설·인프라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바이오·K뷰티 유럽 공략에 이탈리아 전략지
미래 유망산업 분야에서는 바이오와 뷰티 산업 협력 사례가 제시됐다. 국내 바이오기업 큐어버스는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 파마와 체결한 3억 6000만 달러 규모 기술수출 사례를 소개하며 난치성 뇌질환 치료제 공동 개발과 상업화 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탈리아는 유럽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의 약 23%를 차지하는 생산 거점이다. 한국 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유럽 시장 진출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스맥스 역시 이탈리아 ODM 기업 케미노바 인수를 통해 확보한 현지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K-뷰티의 유럽 시장 확대 전략을 설명했다. 이탈리아가 보유한 화장품 제조 역량과 한국의 제품 개발 능력을 결합해 유럽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경제 협력 새 국면”
이번 BRT에 한국 측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를 비롯해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김동춘 LG화학 사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문재영 HD건설기계 사장, 김종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등 첨단 전략산업과 제조업을 아우르는 주요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유럽 내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K-푸드 및 패션 분야 협력을 위해 김정수 삼양식품 회장,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도 함께 했다.
이탈리아 측에서는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고위급 인사를 비롯해 조르조 마르시아이 이탈리아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산업 생태계를 이끄는 주요 기업 리더들이 참석했다.
아울러 이탈리아 최대 조선 기업 핀칸티에리 비아죠 마조타 회장, 방산·항공우주 및 첨단산업 기업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이탈리아 의 잠피에로 디 파올로 CEO, 이탈리아 글로벌 통신 인프라를 이끄는 스파클의 엔리코 마리아 바냐스코 CEO, 이탈리아 대표 탈탄소 전환 에너지기업 에니라이브 마르코 페트라키니 회장도 함께 자리했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고성능·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와 세계 1000개 이상 매장을 보유한 뷰티 브랜드 키코 밀라노 등 럭셔리·코스메틱 분야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류 회장은 “올해 두 차례 정상 간 만남과 양국 관계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으로 경제협력이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며 “AI, 재생에너지,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