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상화폐 시장 규모가 여전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글로벌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되면서 거래 규모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11일 미국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가 최근 발표한 올해 1분기 글로벌 소매 가상화폐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거래 규모는 690억 달러(약 95조 원)로 추산됐다. 이는 미국(212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한국 다음으로는 러시아(480억 달러), 인도(460억 달러), 튀르키예(400억 달러)가 뒤를 이었다.
이번 보고서는 거래소, P2P 플랫폼, 지갑 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개인투자자 거래를 집계했으며 기관투자가 거래와 OTC, 수탁 서비스 등은 제외했다.
한국 시장은 지난 분기에 이어 세계 2위 순위를 유지했지만 규모는 크게 줄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거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해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평균 감소율은 20%였다.
TRM은 한국 시장이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글로벌 투자심리에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특성 탓에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확산되자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폭의 거래 감소를 기록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올 1분기는 미국 관세정책 불확실성, 강달러, 고금리 환경이 겹치면서 위험자산 선호가 크게 위축된 시기였다. 비트코인 가격도 해당 분기 동안 22% 하락했다. TRM은 “안정적인 법정통화와 경쟁력 있는 자본시장을 갖춘 국가에서는 위험회피 심리와 기회비용 증가로 가상화폐 거래가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인도와 튀르키예 등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였다. 인도의 거래 규모 감소율은 5%에 그쳤고 튀르키예는 오히려 7% 성장했다.
TRM은 이러한 차이가 가상화폐 활용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미국 등에서는 가상화폐가 투자·투기 자산 성격이 강한 반면 일부 신흥국에서는 가치저장 수단이자 달러 대체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TRM은 “통화가치 하락이나 자본통제 등으로 대안 금융수단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가상화폐가 일종의 ‘그림자 달러 시스템(shadow dollar system)’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소매 가상화폐 거래 규모는 올해 1분기 979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수치다. TRM은 지난해 4분기 23% 감소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위축세가 이어졌으며, 2022년 약세장 이후 가장 큰 연속 감소폭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영향력 확대에도 주목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되며 가상화폐 채택을 견인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베네수엘라의 소매 가상화폐 거래 규모는 179억 달러로 전 세계 17위에 올랐다. TRM은 베네수엘라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투기 수단이 아닌 결제 및 저축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2025년 1월 월 6900만 달러에서 올해 3월 7억 7700만 달러로 12배 증가했다. TRM은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규제법(MiCA) 시행에 따른 규제 명확성과 미국 무역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달러 중심 결제망의 대안 수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