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와 신세계프라퍼티의 등기이사를 맡아 책임 경영의 전면에 나선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이 상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피해 등기이사를 맡지 않는 추세 속에서 이례적인 행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사태로 그룹 안팎으로 어수선한 시점에서 직접 쇄신을 이끌며 실적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은 이와 함께 공석인 스타벅스코리아 신임 대표에 신동우 신세계프라퍼티 지원본부장을 내정했다.
8일 신세계그룹은 정 회장을 신세계프라퍼티와 이마트의 각자대표로 각각 내정했다고 밝혔다. 우선 신세계프라퍼티는 이르면 이달 중 이사회를 열어 정 회장을 등기이사로 추천한다. 이후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정 회장을 각자대표로 임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세계그룹은 이형천 전 개발본부장을 신세계프라퍼티의 각자대표로 내정했다. 이 신임 대표는 정 회장과 함께 스타필드청라 프로젝트 등 당면 사업을 이끌게 됐다.
정 회장은 이마트의 대표이사도 내년 초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은 올해 9~11월 단행할 정기 임원 인사에서 정 회장을 이마트 각자대표로 내정한 후 내년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한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정 회장은 한채양 이마트 대표이사와 각자대표직을 수행한다. 정 회장은 “회사 경영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지라는 시장의 요구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대표이사로서 이사회와 주주의 평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그룹의 현재 캐시카우인 이마트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의 핵심 축인 신세계프라퍼티를 직접 이끌게 된다. 신세계프라퍼티는 그룹의 주요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계열사로 올해 3월 미국 리플렉션AI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AI 데이터센터 건립 실무도 주도하고 있다. 이 데이터센터는 250㎿ 규모로 약 25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업계는 인프라 구축에 10조 원 이상이 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정 회장은 리플렉션AI와의 MOU에도 직접 서명한 데 이어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를 맡음으로써 성장을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미래와 현재를 모두 책임지게 된다”며 “그룹 근간인 이마트 대표로도 이름을 올리면 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고 평가받는 자리에 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의 대표이사 겸직은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으로 발생한 그룹 안팎의 혼란도 책임지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마트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분 67.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 대국민사과 당시 스타벅스 매장 직원에 대한 비난을 멈출 것을 당부하면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대표 행보를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룹 오너 일가의 등기임원 겸직이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리더스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49곳의 그룹 총수가 맡은 등기임원직은 2020년 117건에서 지난해 100건으로 14.5% 감소했다. 최근 재해나 주주 보호 문제에서 등기이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입법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이마트와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가 되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그룹 내 계열사는 G마켓 최대주주인 AG글로벌홀딩스를 포함해 총 3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신세계 측은 “오너의 대표이사 겸직 문제는 몇 주 만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오래전부터 검토해왔다”며 “스타벅스 사태 이후 책임 경영을 강화할 때라고 최종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에 신동우 신세계 전략실 재무본부장(상무)을 내정했다. 정 회장은 스타벅스 마케팅 사태 이후 내부 수습은 물론 고객 이탈에 대응할 수 있는 외부 영업력까지 보유한 인물을 물색한 결과 신 대표를 적임자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표는 신세계그룹 전략실에서 근무하며 정 회장의 경영 철학을 가까이서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내 내부 사정에도 밝다. 2022년 쓱닷컴 재직 당시에는 영업을 이끌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