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을 지나 북촌로5가길로 접어들자 초입에 있는 아디다스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 앞마당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북촌로5가길에서 삼청로로 이어지며 삼청정독길로도 불리는 북촌의 핵심 상권인 이곳은 카페와 공방, 작은 편집숍 위주에서 아디다스와 화장품 브랜드 르라보를 비롯해 의류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매장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7일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인해 한옥의 운치를 경험할 수 있고 경복궁, 광화문 등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북촌·서촌 일대 상권을 주도하는 브랜드가 물갈이 되고 있다. 평일에도 수요가 뒷받침되는 ‘주7일 상권’으로 자리 잡자 자본력을 지닌 브랜드들이 기존 점포를 빠르게 대체하는 흐름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6만 명으로 전년 대비 18% 이상 늘고 카드 소비액은 같은 기간 50% 급증했다.
지난달에는 골프웨어 브랜드 말본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말본 가옥’이 문을 열었다. 강남구 도산공원과 성동구 성수동에 이어 북촌을 플래그십 스토어로 점찍었는데, 연면적 208㎡ 규모의 2층 건물 월 임대료는 35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북촌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해 중순 이후 임대료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며 “성수동이 포화 상태라 브랜드들이 북촌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대부분 30평대(100㎡) 이상의 단독 건물 통임대를 원하다 보니 조건에 맞는 매물의 임대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거리의 3층 건물은 현재 한 카페가 단독으로 임대중인데 연면적이 455㎡에 보증금 10억 원, 월세 500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전용면적 기준 3.3㎡당 월 임대료가 36만 원을 웃돈다.
권리금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매출이 담보되는 A급 입지는 바닥 권리금만 많게는 2억~5억 원까지도 형성돼 있다. 바닥 권리금은 일체의 집기, 시설 등을 제외한 채 온전히 자리에 대한 기본 권리금을 말한다.
북촌과 더불어 ‘주7일 상권’으로 불리는 서촌은 중형 평형대 이상의 매물이 더욱 드물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골목의 끝에 있는 한 양식당 매물은 보증금 6억 원에 월세 400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권리금도 3억~4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중개 업체의 설명이다. A급 입지로 꼽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별관에서 경복궁역 메인 대로까지 연결되는 자하문로의 임대료는 3.3㎡당 30만원 수준이다.
임대료 부담에 상권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하문로에 접해 48년 간 자리를 지켜온 백반집인 청하식당이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인근 점포들은 공사가 한창이고 이미 아디다스, 화장품 브랜드 이솝을 비롯한 브랜드와 고가의 편집숍들이 인근에 들어선 상태다.
권리금이 높아졌어도 새롭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 점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거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일대에서 영업을 한 자영업자는 “권리금이 수억원이라고 해도 기존에 수년 간 노력해서 쌓아온 고객과 입지를 모두 잃고 또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 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촌과 서촌을 지탱해온 식당과 카페, 공방들이 자리를 잃으면서 과거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이 겪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용호 메이트플러스 팀장은 “북촌과 서촌은 가로수길처럼 대규모 공실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기업들의 진출로 인해 특색없는 흔한 상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다양한 업체들이 상권을 형성한 뒤 자본력을 가진 업체들이 나타나 획일화되는 게 안타깝다”며 “로컬 브랜드 지원 등 정책을 펼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