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위험도를 80% 줄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올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에 적은 문구다. 고위험요인(SIF) 기법을 도입해 안전 관리를 혁신했다는 자평이었다. 그러나 이달 1일 대전사업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20대 비정규직 직원 2명을 포함한 5명이 숨졌다.
홍보 문구와 현실의 간극은 컸다. 해당 사업장은 2018년과 2019년 연이어 폭발 사고가 발생해 공정안전관리 등급에서 최하위를 받았던 곳이다. 고용노동부도 불과 1년 전 SIF 기법으로 분석한 중대재해 사례에 이번 사고와 유사한 ‘세척 중 폭발’ 사례 3건을 포함해 발표했다. 이미 전조 증상과 경고가 수차례 있었다는 의미다.
경제 석학 미셸 우커가 제시한 ‘회색 코뿔소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코뿔소가 달려올 때 멀리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듯 큰 위험에는 늘 전조가 있지만 안일하게 대응을 미루다 치명적 상황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주로 금융·경제위기를 설명할 때 쓰이지만 한국 사회의 안전사고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도 같은 패턴이었다. 사고 약 12시간 전 9공구 경간 슬래브 절단 작업 중 단차가 2.9㎝ 주저앉는 이상 징후가 있었다. 당국은 공사 재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안전진단에 나섰지만 현장 인력을 위한 구조물 보강이나 안전 장비 착용 같은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결국 안전을 진단하러 나섰던 3명이 안전 관리 소홀로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관리·감독 소홀과 안전불감증이 겹친 인재로 봤다.
두 사고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코뿔소는 멀리서부터 달려오고 있었고 진동도 충분했다. 그러나 누구도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세척 대상 화약 성분은 물과 접촉하면 무력화돼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해왔다”고 해명했다. 서소문 사고 당국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고 했다. 사고 뒤 나오는 말은 늘 비슷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사후 대책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전 경고음은 무시되고 사고가 터진 뒤에야 특별감독과 전수조사가 시작된다. 사과와 해명은 반복되지만 다음 위기를 멈춰 세울 준비는 보이지 않는다. 전조 증상을 외면한 대가는 늘 사람의 목숨이었다. 위기를 애써 보지 않으려 한 뒤 보이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행위는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