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2002년 6월 5일. 충북 청주시의 한 빌라. 고교 1학년 아들이 하교 후 집에 들어서자 거실은 엉망이었고 전화선은 뽑혀 있었다. 부엌엔 저녁을 준비하다 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 강정숙(43)이 사라졌다.
단 한 번도 연락 없이 집을 비운 적 없던 사람이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5년 동안 홀로 가족을 부양해 온 그였다. 남매는 밤새 베란다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집 내부도 살피지 않고 “접수해 놓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가족들이 직접 통장을 확인하니 실종 당일 오후 5시에 1000만 원이 빠져나간 흔적이 있었다. 실종된 강씨는 평소 작은 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알뜰한 사람이었다. 또 통장에 있던 돈은 남편이 교통사고 당시 받은 금액으로 강씨는 이를 살뜰하게 모아놓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절대 손대지 않는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범행을 확신했다.
하지만 남편의 설명에도 경찰은 단순 가출로 단정했다. 경찰에게서 되돌아온 답변은 “바람나서 집 나가는 여자들이 요즘은 많으니, 기다려 보라”였다.
가족들은 은행을 찾아가 관계자에게 사정해 실종 당일 오후 20~30대로 보이는 남성이 은행에서 강 씨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장면이 담긴 폐쇟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다.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반응은 역시나 냉담했다.
가족들에 의하면 당시 경찰은 “영상 속 남성이 내연남일 거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켜 돈을 인출한 거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전단지를 만들어 시내를 돌아다닌 건 경찰이 아니라 가족들이었다. 그 사이 강씨의 휴대전화는 며칠간 청주 시내를 이동하다 신호가 끊겼다. 추적할 수 있는 마지막 단서였다.
실종 23일째인 6월 28일, 빌라에 악취가 번지고 복도에 구더기가 끓었다. 냄새를 따라간 송 군이 옥상 물탱크실 문을 열었다.
벽과 물탱크 사이에 앞치마를 두른 채 심하게 부패한 어머니의 시신이 끼어 있었다. 강씨가 채팅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아들 도시락 준비하러 간다”였다. 저녁을 차리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제야 수사에 나선 경찰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것은 CCTV 속 남성이 아니라 강씨의 남편이었다. 왼팔이 없고 다리에 운동장애가 있는 1급 지체장애인이었지만, “면식범 소행”이라는 심증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알리바이가 확인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남편을 의심하는 사이 진범에게는 도주할 시간이 주어졌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으로 경찰의 부실 수사가 세상에 알려졌다. 재수사가 결정됐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경찰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후 실종 신고를 단순 가출로 처리하고 현장을 보존하지 않은 초동수사 실패의 대표 사례로 남았다. 2014년 경찰의 실종 신고 초동 대응 매뉴얼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이 사건은 반면교사로 거듭 인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