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앞서 가던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 추돌 사고를 낸 이 모(40) 씨는 청구된 수리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비 업체가 스크래치만 난 범퍼를 통째로 교체하고 전혀 손상되지 않은 램프도 새것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사고와 무관한 트렁크도 수리했다. 청구된 수리비만 80만 원이었는데 최소 48만 원은 과잉 정비로 의심됐다.
정비 업체들의 과잉 수리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불필요한 정비에 보험금이 나가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만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손해보험사가 보험금으로 지급한 공임·도장 등 수리비와 부품비 규모는 8조 원으로 추정된다.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 4개사가 지급한 수리·부품비(7조 1975억 원)를 전체 업계로 환산한 수치다.
지난해 4대 손보사가 지급한 부품비는 3조 7470억 원으로 2020년 대비 42.9%나 급증했다. 이 씨 사례처럼 경미 손상으로 판금·도장 등 복원 수리가 가능한 상태라도 새 부품으로 교체하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4대 손보사의 공임·도장 등 수리비 지출도 2020년 2조 8114억 원에서 2025년 3조 4505억 원으로 22.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리 건수가 487만 건에서 495만 건으로 1.6%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건당 수리비가 20% 넘게 증가한 셈이다.
차량 정비 업체들이 과잉 교체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보험 약관상 경미 손상 수리 기준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관에 따르면 부품 교체 없이 복원할 수 있는 손실은 복원 수리 비용만 인정된다. 그러나 정비 업체들은 자신들이 차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행 의무가 없다며 복원 대신 교체 수리를 권유하는 것이다. 실제 앞뒤 범퍼에 대한 연간 교환 횟수는 각각 146만 건, 83만 건으로 수리 횟수(25만 건·24만 건)를 크게 웃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당 수리비만 보면 복원이 비싸지만 회전율을 고려하면 교체가 훨씬 더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후미 추돌 사고가 발생한 피해 차량일수록 상대방 보험사에서 수리비를 받을 수 있고 자기부담금도 없기 때문에 과잉 교체 수리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정비 업체 대부분은 자동차관리법상 차주에게 반드시 사전 발급해야 하는 견적서를 주지 않는다. 차량 정비 업체 중에서는 수리가 필요한 부위에 손상이 있었는지 증빙 사진도 제출하지 않고 무작정 수리 후 비용을 청구하는 곳도 적지 않다.
문제는 범퍼 같은 소모품을 제외한 패널 교체 수리가 차량 가치를 훼손해 차주에게는 불리하다는 것이다. 통상 교체 수리는 원상 복구가 불가능할 때 선택하는 것으로 복원 수리에 비해 파손 정도가 훨씬 컸다고 판단한다. 범퍼를 제외한 다른 부품의 교체 수리는 감가 폭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정비 업체들이 이를 알리지 않는 것이다. 보험개발원 카히스토리, 국토교통부 자동차365 등에서 보험 수리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만큼 불이익을 피할 방법도 없다.
보험금 누수가 지속되면서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올해 1~4월 85.8%로 전년 동기 대비 2.5%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자동차보험료를 5년 만에 인상했으나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연속 인하된 영향이 여전한 상황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정비 업체들이 보험 약관을 이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 등으로 구속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필요한 교체 수리를 하면 중고차로 팔 때 사고 감가를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비 업체가 수리 방식을 권유할 때 차량 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