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Meta)가 일본에서 인공지능(AI) 안경 판매를 시작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불법 촬영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 안경과 구분하기 어려운 디자인 탓에 주변 사람들이 촬영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메타는 최근 일본에서 AI 안경 ‘레이밴 메타(Ray-Ban Meta)’ 판매를 시작했다. 레이밴 메타는 메타가 프랑스 안경업체 에실로룩소티카와 함께 개발한 제품으로 안경테에 카메라와 스피커가 내장돼 있다.
사용자는 음성 명령만으로 사진을 촬영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검색하고 번역하는 등 다양한 AI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안경의 외형이다. 일반 안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는 것과 달리 주변 사람들은 촬영 여부를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몰래 찍는 등 불법 촬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회의실이나 업무 공간에서 AI 안경 착용자가 문서나 모니터 화면을 촬영할 경우 회사 내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보안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AI 안경이 이어폰이나 렌즈형 디스플레이와 결합할 경우 부정행위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자가 시험 문제나 바둑·장기·체스 등 상황을 AI에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조언을 받는 방식의 악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메타는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의식해 촬영 중일 때 안경 전면의 발광다이오드(LED)가 켜지도록 설계했다. 또 LED를 가리면 카메라 작동이 중단되는 기능도 적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장치가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LED 표시등을 가린 상태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도록 돕는 테이프가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LED가 켜지지 않도록 개조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 차단 장치와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는 셈이다.
AI 안경 시장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구글은 올가을 안경형 AI 단말 출시를 준비 중이다. 구글은 과거 ‘구글 글래스’가 사생활 침해 논란 끝에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 경험을 고려해 새로운 제품은 이용자와 주변인의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검토하며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우려는 향후 얼굴인식 기능이 결합될 가능성이다. 현재 레이밴 메타에는 얼굴인식 기능이 탑재되지 않았지만, 향후 AI 안경이 얼굴인식 기술과 결합할 경우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의 신상을 즉시 확인할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얼굴 사진과 개인정보를 공개해둔 사람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AI 안경으로 촬영한 얼굴을 외부 얼굴인식 시스템과 인터넷 공개 정보와 대조하면 이름·출신 학교·주소·전화번호·가족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24년 미국에서는 학생 두 명이 AI 안경으로 촬영한 영상과 외부 얼굴인식 시스템을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일부 대상자의 신원과 생활 정보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자유인권협회(ACLU)를 비롯한 70여 개 시민단체는 메타에 얼굴인식 기능 도입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얼굴인식 기술이 개인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AI 안경의 확산 속도를 고려할 때 개별 기업의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데라다 쓰토무 고베대 교수는 “촬영 중일 때뿐 아니라 AI 기능을 사용하고 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업계 공통의 표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