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 호황에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80%가 연내 조기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물가 급등으로 분모(명목 GDP)가 늘어난 결과인 만큼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 계층에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을 종합하면 반도체 수출 호조와 환율 급등에 올해 GDP 디플레이터가 10%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소비자물가에 투자와 수출입 가격까지 반영한다. 반도체 수출 가격과 환율이 오르면 명목 수출액이 늘어나면서 GDP 디플레이터를 밀어 올리는 방향으로 힘이 작용한다. GDP 디플레이터 10%는 1990년(10.1%) 이후 36년 만에 최고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출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판매 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GDP 디플레이터 상승 요인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하반기 반도체 경기에 따라 GDP 디플레이터가 한 자릿수 아닌 두 자릿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GDP 디플레이터가 10%가 되면 한국은행의 올해 실질 성장률 전망치 2.6% 기준 명목 성장률은 12.6%가 된다. 정부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1.5%인 만큼 부채가 늘어나면 올해 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9.4%로 지난해 말(88.6%) 대비 약 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80% 달성 시점을 2030년으로 예상했는데 이 경우 4년이나 조기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억제 기조를 고려하면 가계대출 규제는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모순적 상황인 셈이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가 부동산 억제책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GDP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대출 한도를 늘려줄 가능성은 적다”며 “대출 공급 부족과 금리 인상에 서민과 취약층만 힘들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가계부채 비율 안정화는 실질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아닌 물가 급등으로 이뤄낸 성과다. 한은이 하반기 금리 인상을 공식화한 만큼 취약차주는 물가와 이자 부담이 모두 확대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K자형’ 양극화 우려도 크다.
실제로 한은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가 있었던 28일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쓰인 금융채 5년물(AAA) 금리는 4.280%로 중동 전쟁 직전인 3월 말(3.572%) 대비 0.708%포인트 상승했다. 현재 5대 은행의 주담대 5년 고정형 금리는 연 4.26~6.95%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금리 상단이 8%를 향해 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영업자의 부담도 크다. 한은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의 연간 이자 부담은 1조 8000억 원 늘어난다. 현재 연체율이 계속 오르고 있는 중소기업도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