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디지털 공간을 넘어 제조 현장으로 확산하면서 한국의 첨단 제조업 기반 데이터와 인프라가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이 철강·조선·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현장과 축적된 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준 포스코DX(022100) 로봇자동화센터장(상무)는 지난 28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6’의 특별 세션 ‘로보틱스 벤처 포럼’에서 “철강과 조선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강도 작업을 사람이 하고 있다”며 “피지컬 AI를 통해 이런 작업의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여 나간다면 큰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준 상무는 한국 제조업의 현장 데이터가 피지컬 AI 경쟁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은 AI, 중국은 하드웨어라면 우리나라는 첨단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고 로봇 사용 빈도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그럼에도 아직 현장에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많고, 이를 새로운 센서와 로봇, AI를 결합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따. 이어 포스코DX가 투자한 페르소나AI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에는 조선업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는 것”이라며 “우리는 제조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피지컬 AI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또 윤 상무는 피지컬 AI가 제조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장에 로봇을 투입하려면 투자 대비 수익성(ROI)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 상무는 “공장에 로봇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인 단순히 단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공사부터 시작해 시스템 전체에 투자하는 것이어서 금액 단위가 달라진다”며 “몇 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노동 인구 부족 문제가 심해지면서 ROI에 대한 부담이 점차 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기존 설비와의 연동, 현장 작업 흐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윤 상무는 “우리나라는 이미 자동화가 많이 돼 있는 만큼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로봇 성능이 좋아도 라인 전체의 퍼포먼스에서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로봇 시스템 자체보다 전체 라인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태연 카본식스 대표 역시 피지컬 AI의 성패는 현장 적용 능력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카본식스는 제조업 자동화에 필요한 지능과 로봇 핸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케이블이나 필름처럼 비정형 제품을 다루거나 환경 변화가 큰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다.
문태연 대표는 “피지컬 AI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API만 연동해서 팔거나 확장하기 어렵다”며 “공장에 어떤 툴을 쓸지, 시스템 연동은 어떻게 할지, ROI는 어떻게 맞출지 등 현장 적용 단계까지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실제 제조 현장에 피지컬 AI를 상용화해 도입하고 있고, 글로벌 진출도 작업자가 많은 저임금 아시아 국가와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정책 지원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실제로 중소·중견기업 공장을 가보면 박사급 모델링 인력이 없어 지능형 모델을 가져와 직접 구현하기 어렵고, 휴머노이드를 사 오더라도 시스템 인큐베이션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AI 지식이 없어도 노코드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피지컬 AI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바우처 사업도 피지컬 AI 확산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문 대표는 “과거 AI 비전 관련 표준품에 대한 바우처 지원 사업이 유용했다”며 “새로운 기술의 관문을 여는 표준품에 대해 중소·중견기업이 부담 없이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지원이 연계된다면 기술 도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도 한국과 아시아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주목하고 있다. 문 대표는 “미국 벤처캐피털(VC)들에게 피칭을 해보면 피지컬 AI 영역에서 아시아의 데이터와 제조업 인프라를 굉장히 매력적인 강점으로 본다”며 “한국과 아시아 시장의 강점을 활용해 실제 미국 시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증 사례와 증거가 뒷받침된다면 해외 투자 유치와 이를 통한 국내 피지컬 AI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 대표는 피지컬 AI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기술보다 문제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문 대표는 “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좋은 문제를 찾는 게 정말 어렵다”며 “좋은 문제를 찾으려면 결국 산업 도메인에 직접 붙어서 실제 페인포인트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이든 항공이든 AI가 실물 세계로 오고 있는 만큼 고객과 함께 구체적인 산업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