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결국 무기입니다. 원자폭탄이나 미사일보다 더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농업계에서 들은 말이다. 전쟁과 기후변화가 겹친 지금은 작은 수급 불안에도 밥상물가가 흔들린다. 식량은 이제 단순한 먹거리 문제가 아니다. 안보이자 물가 문제다.
정부도 변화를 말한다. 인공지능(AI)과 위성·드론으로 작황을 미리 보고 수급 불안을 예측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예측 이후다. 가격이 오르면 할인 지원을 늘리고 비축 물량을 푼다. 가격이 떨어지면 수매와 소비 촉진에 나선다. 당장 필요한 처방이지만 매년 반복되는 방식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통 구조다. 농축산물 가격은 날씨와 생산량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가 물량을 쥐고 있는지, 어떻게 가격을 정하는지, 어디서 마진이 붙는지가 가격을 흔든다. 생산자는 싸게 팔고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 일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다. 유통 과정 어딘가가 막혀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계란과 돼지고기 담합 제재는 이를 보여준다. 계란은 기준가격을 정하는 방식이 실제 거래가격에 영향을 줬다. 돼지고기는 대형마트 납품 과정에서 가격을 맞춘 정황이 적발됐다. 농축산물 가격이 불안할 때 할인율만 볼 일이 아니다. 가격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바꿔야 할 것도 분명하다.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어떤 비용이 붙는지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 업체로 이어지는 가격 결정 과정도 더 촘촘히 들여다봐야 한다. 생산자 단체가 물량을 모아 협상할 수 있게 하고 계약재배와 사전거래를 넓히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도 한계는 인정한다. 유통 채널을 손보고 구조 개선 대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해관계와 거래 관행이 얽혀 속도가 더딘 것이 현실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식량 전쟁을 말하는 시대라면 더 늦춰서는 안 된다.
유통 구조 개혁은 소비자물가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농어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소비자는 할인 없이는 비싸게 사고 농민은 수매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면 그사이 어딘가가 고장 난 것이다.
할인과 비축은 필요하다. 다만 시간을 버는 수단이어야 한다. AI로 위기를 먼저 알아내고도 낡은 유통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미래 농정이 아니다. 할인과 비축을 더 빨리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 지금 바뀌어야 할 것은 기술보다 가격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