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소 도입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가 폐지된다. 그동안 한국전력공사만 수행하던 송전망 건설 분야도 민간에 개방된다. 2040년 석탄발전소 폐지에 발맞춰 산업 전환을 지원할 체계도 마련된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19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법안 46건을 의결했다. 정부가 제시한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입법 사안들이 대거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는 이야기다. 이호현 기후부 2차관은 기자들을 만나 “탄소중립 에너지 믹스로 가기 위해 지역 수용성을 높이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할 수 있는 단서를 갖는 법안들이 통과했다”고평가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법안은 RPS제도를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장기고정가격 입찰 방식으로 보급한다 내용의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이다. RPS는 대규모 발전사업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발전사들은 의무 비율만큼은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해 운영하거나 외부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들로부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입해 충당해야 한다.
RPS 제도 하에서 정부는 의무 비율만 조정하면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은 REC를 판매해 초과 수익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RPS 제도가 시작된 2012년 3GW(기가와트)에 불과했으나 2025년 말에는 37GW로 12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그동안 재생에너지 시장을 키운 RPS 제도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우선 대규모 발전사들의 재무 부담이 과도해졌다. 제도 도입 초기 의무 비율이 미미할 때는 지출 부담이 크지 않았는데 지난해 기준 의무 비율이 15%가 되면서 대형 발전사들의 연간 REC 구매 비용이 4조 원을 돌파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소규모·민간 중심으로 보급되면서 전력망 부담이 커지고 공공성이 약화된 것도 문제다.
이에 정부는 RPS 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2027년부터 매년 특정 물량을 장기고정가격으로 입찰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보급한다. 대규모 발전사들이 직접 중대형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발굴할 수 있도록 유인하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기존 소규모 사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법 시행 전 기존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최대 20년의 잔여 한도 내에서 REC 발급 및 거래를 허용한다. REC 현물시장 역시 폐지하기 전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계약시장 전환을 유도한다.
한전의 독점 영역이던 송전선 건설도 민간에 개방하기 위해 전기사업법·전원개발촉진법·전력망특별법 등 전력망 3법도 바꿨다. 국가 기간 전력망 건설 사업시행자를 ‘송전사업자’에서 ‘송전사업자 외의 자’로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한전 외 민간 기업도 송전망 건설에 뛰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사업시행 자격은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된 사업자에 한정된다.
정부가 송전망 건설 업무를 민간에 개방한 것은 한전만의 역량으로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송전망 확충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압 송전망을 건설하는 경우 지역 주민 반발이 심각해 곳곳에서 공사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 최근 154㎸(킬로볼트) 기장~장안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준공 예정일이 1년 더 밀렸다.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구축 사업 역시 경기 하남시가 동서울 변환소 신·증설을 막아서면서 수년째 좌초됐다. 지난해 완공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은 사업이 마무리되는데 22년이나 걸렸다.
이에 정부는 입지 선정부터 환경평가, 용지확보, 설계, 시공에 이르는 송전망 건설 사업 전 단계를 민간이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송전망 민영화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사업은 BT(건설 후 이관) 방식으로 실시한다. 민자 고속도로와 같이 건설 사업자가 수년간 사용료를 받는 사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준공되는 즉시 송전사업자인 한전이 송전망을 인수한다는 이야기다.
2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던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 지역 지원 특별법’도 기후노동위 문턱을 넘겼다. 특별법에는 발전사업자가 폐지 계획을 제출하면 전력거래소는 계통영향을 분석하고 전력정책심의위를 거쳐 정부의 승인을 받는 등 석탄발전소 폐지 절차가 명시됐다.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동자, 주민·지자체, 발전사업자,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체계도 각각 마련한다. 정부는 5년마다 전반적인 지원방향을 담은 기본계획을 내고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근거해 지역밀착형 시행 계획을 수립하는 식이다. 또 당초 원안에서는 지원 대상이 되는 지자체가 석탄발전소 소재지로 한정됐지만 기후노동위 안에서는 인접지역까지 확대됐다.
전기사업법과 분산에너지법이 개정됨에 따라 햇빛소득 마을은 발전소를 만드는 대로 가장 먼저 전력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기후부 관계자는 “계통포화지역의 경우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어도 전력망에 연결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주민 협동조합 기반 발전사업자들은 사업 촉진을 위해 예외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햇빛소득마을은 개별 설비 용량이 1MW(메가와트) 정도이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