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목표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고 이를 내부 구성원에게만 배분하는 것은 좋은 해법이 아닙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 데이터 공유 등 혁신 생태계를 위해 재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 ‘제4회 도헌학술심포지엄’에 기조 강연자로 나서 이같이 강조했다. 정 이 사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초과이익 공유는 사회 전체를 위한 포용적 도구가 돼야 한다”며 AI 시대의 초과이익 공유 해법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무총리와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낸 정 이사장은 당시 기업의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정책적 지원을 받은 대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해 주주와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 중소기업까지도 그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 이사장은 “AI는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기회인 동시에 기술을 독점한 소수와 소외된 다수 사이의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이는 위협”이라며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을 넘어 기술 자산의 수평적 공유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동반성장이 자본과 노동의 공유에 집중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공유로 진화해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정 이사장은 “대기업은 데이터를 공개하고, 협력업체가 AI 기술을 활용해 자체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을 확보하도록 후원하는 방식의 기술적 파트너십을 추구해야 한다”며 “특히, 한국 경제의 최대 강점인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대·중소기업 간의 제조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보호를 강화한 소위 ‘노란봉투법’ 시행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피지컬 AI의 출현은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효과를 넘어 경제적으로 무용한 계급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며 “대기업 경영자와 노조는 독식 장벽을 높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협력 모델, 즉 상생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대신할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도 제안했다. 정 이사장은 경사노위에 대해 노동 문제로 치환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 이슈가 많고,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는 대화기구로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필요하다”며 “정부, 대기업, 중견·중소기업, 노동계 대표가 상시 참여하는 국가경제혁신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도출된 합의안은 입법 과정을 통해 강력한 실행력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는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 등 핵심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방위비의 대폭 증액이 불가피하다면 역으로 이를 지렛대 삼아야 한다”며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나 방위산업 진출 등 반대급부를 챙기는 실용적 패키지 협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럽 주요국들과 개방형 통상국가 연대를 구축하고 기존의 강대국 중심 외교를 넘어 글로벌사우스 등 다양한 국가들과 국제적 동반성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외교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세계 질서의 대전환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정 이사장을 비롯해 염재호 태재대 총장,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윤국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AI대학 학장,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석했다. 윤희성 일송학원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절망이 터져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AI와 로봇 기술이 가져올 풍요와 번영을 노래하는 극명한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세대 갈등, 빈부 갈등 등 각기 다른 고충이 갈수록 깊어지난 상황에서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정신 양성이 더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송호근 한림대 도헌학술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미·중 패권 충돌의 파고가 글로벌 경제와 외교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각계 전문가들의 지혜가 한데 모여 패권 충돌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설 방안을 모색한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