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 2층 헤리티지홀에서 열린 전통주 페어링 디너 행사 ‘더 헤리티지 다이닝 위드 윤주모’. 넷플릭스 음식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했던 전통주 전문가 윤주모가 엄선한 전통주 6종류를 한식 코스 요리와 함께 차례로 맛보는 행사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일본·중국·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통 음식인 문어숙회·해물파전·LA갈비 등을 전통주와 페어링하며 음미했다. 이들은 남산의밤, 삼양춘 오마이갓 스파클링 막걸리, 지란지교 카모마일 탁주 등 이름도 맛도 낯선 술을 접하면서 옆자리 참석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모습이었다.
해가 길어지면서 늦은 오후에서 저녁 시간 야외에서 먹고 마시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이 시기를 맞아 호텔들은 저녁 식음 행사에 힘을 주고 있다. 전통주 페어링 디너, 풀사이드 와인, 노을 앞 샴페인 등 호텔에서 늦봄~초여름 밤을 보내는 방식도 다양하다. 객실을 예약하지 않아도 호텔에서 술과 음식, 공연과 전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야장(夜場)’이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카드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여행 서비스 부문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트래블이 발간한 ‘2026 글로벌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밀레니얼·Z세대 응답자의 89%가 여행 일정에서 ‘현지 먹거리 경험을 즐길 시간’을 중시하고 있다. 호텔이 전통주와 한식 페어링을 앞세워 투숙객의 저녁 시간을 호텔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이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국 문화 체험 이벤트 ‘한마루’가 대표적이다. ‘더 헤리티지 다이닝 위드 윤주모’도 한마루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외국인 고객들이 호텔에서 한국의 술과 음식, 전통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행사 참여 신청은 매번 조기 마감될 만큼 반응이 높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이달 16일 도심 속 야외 수영장에서 와인 마켓을 열었다. 남산 자락의 야외 공간에는 와인과 공연을 즐기기 위해 이른 저녁부터 방문객들이 모였다. 이들은 풀사이드에서 와인을 고르고 음식과 재즈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겼다. 입장권 한 장으로 100여 종의 와인과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었고 현장에서 구매한 술은 별도 콜키지 차지(손님이 자신의 술을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 없이 야외 테이블에서 마실 수 있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방문객도 즉석 재즈·탭댄스 공연과 도심 속 파티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글로벌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오픈테이블의 ‘2026 레스토랑 다이닝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오후 4~5시 사이 해피아워 예약이 전년 대비 13% 증가할 정도로 이른 오후부터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즐기는 외식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반얀트리 역시 와인과 공연을 결합해 저녁 시간대 식음 수요를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파르나스 호텔 제주 ‘폰드메르 바’는 제주 바다와 노을이 가장 붉게 물드는 시각인 오후 5시에 맞춰 문을 연다. 자리에 앉으면 정면으로 수평선이 보이고 하늘이 주황빛에서 보랏빛으로 바뀌는 동안 샴페인 잔을 손에 쥐게 된다. 호텔들이 체크인 전후 시간대를 공략하는 조식·브런치 패키지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파르나스는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겨냥해 저녁에 호텔을 찾도록 만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26 식품외식산업 전망’에서 올해 외식 핵심 트렌드로 ‘공간과 경험’을 꼽았다. 제주의 노을과 바다를 감상하며 샴페인과 음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저녁 시간대 호텔을 찾을 이유가 되는 셈이다.
제주신라호텔은 다음 달 13일부터 ‘사일런트 풀파티’를 연다. 투숙객이 각자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야외 풀장의 소음은 줄이면서도 파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공간에 모여 있지만 각자의 헤드셋으로 디제이가 선곡한 음악을 듣기 때문에 함께 즐기면서도 저마다의 리듬으로 여름밤을 즐길 수 있다.
신라호텔은 지난해 처음 사일런트 풀파티를 선보인 뒤 올해 운영 범위를 넓혔다. 풀사이드뿐 아니라 카바나 이용객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동선을 확대했고 여름 시즌 매일 밤 행사를 운영한다. 관련 객실 패키지도 함께 판매한다. 단순히 객실 예약 고객에게 부가 행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파티 자체가 객실 패키지를 선택하게 만드는 유인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저녁 시간대에 호텔에 머물 이유를 늘리기 위해 식음료(F&B) 콘텐츠를 강화하는 추세”라면서 “이른 오후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소비 접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