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현재 퇴직자를 대상으로 재고용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들을 대체할 숙련된 인력을 찾기 어려워서다. A사 관계자는 “중소 제조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신입을 뽑기가 어려워 기존 인력을 재고용해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별도 재교육이 필요하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IT기업 B사도 정년퇴직한 엔지니어를 최근 다시 고용했다. 사내에서 사용하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인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7일 HR업계에 따르면 퇴직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재고용 사례가 생산 현장은 물론 IT업계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서 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인크루트와 함께 최근 각 기업 인사 담당자 225명을 대상으로 퇴직 후 재고용에 대한 설문을 공동으로 진행한 결과 ‘퇴직자 재고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49.3%에 달했다. ‘검토 중’(28.9%)까지 포함하면 78.2%에 달해 사실상 대다수 기업이 제도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재고용 조건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재고용 인력에게 퇴직 직전 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은 54.2%로 가장 높았다. 비용 절감보다 즉시 업무에 투입 가능한 인력 확보가 핵심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고용 이유로는 ‘업무 전반의 연속성 확보’(42.0%), ‘현장 노하우와 네트워크 활용’(25.0%) 등이 꼽혔다. 반면 ‘인건비 부담 완화’는 2.3%에 그쳐 재고용이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라는 기존 인식과 차이를 보였다.
사실상 정년이 없는 회사도 등장했다.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태조엔지니어링의 경우 80세가 넘는 현장 근무자도 있다. 재고용 인력은 기술 자문 및 설계 검토 등 현장 경험과 고급 기술이 필요한 분야 업무를 맡고 있다. 한명식 대표는 “건설엔지니어링 분야는 실전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많은 기술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퇴직자 재고용은 재직자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면서 2030세대 젊은 직원들이 경험을 쌓고 숙련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AI 발전으로 퇴직자 재고용은 더 늘고 있다. 기업들은 신입 및 저연차 등 저숙련 업무를 AI에 맡기는 대신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숙련 인력 확보에 더욱 신경을 쓰는 상황이다.
실제 전체 응답자의 61.8%는 AI·자동화 도입이 신입사원 채용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AI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개발 부서에서 담당하던 신입 업무를 타 부서에서 대행할 수 있게 되면서다. 회사 측은 채용을 축소하는 대신 구성원이 활용할 수 있는 AI 도구 및 관련 교육 지원을 확대했다. 이처럼 퇴직자 재고용 확대와 신입 채용 축소가 맞물리면서 전체 채용 시장의 구조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재고용을 통해 숙련 인력 활용을 늘리는 한편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는 ‘투트랙 전략’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기업들이 인공지능 전환(AX) 프로젝트를 전사적으로 추진하면서 판교 일대에서는 비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AI 에이전트 개발 등 개인 교습도 확산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사람을 새로 뽑기보다 기존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재교육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며 “이러한 구조 변화 속에서 기존 기술이나 AI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 중심으로 조직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퇴직자 재고용 확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생산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숙련 인력을 선별적으로 재고용하려는 기업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며 “다만 미래 대비 차원에서는 신규 인력의 숙련 기간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신규 채용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