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종이 서류 없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실손24’ 서비스 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는 전자의무기록(EMR) 업체들을 향해 강한 압박에 나섰다. 일부 EMR 업체들이 높은 수수료와 추가 지원을 요구하면서 사업 확산이 늦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에서는 이번 사안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했던 ‘계곡 정비사업’과 상황이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EMR 업체들의 기득권 주장이 과도한 상황”이라며 “실손24 확대 사업이 계곡 정비사업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EMR사들이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 11일 열린 실손24 점검회의에서 EMR 업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권 부위원장은 “2009년 권익위원회 권고 이후 14년 만에 도입된 제도가 시행 6개월이 지나도록 연계율 29%에 머물고 있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편익을 외면한 일부 EMR 업체의 집단적 불참 행태를 정부가 직접 정상화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참석해 담합 조사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금융위 부위원장의 공개 경고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까지 재차 강경 메시지를 낸 것은 당국이 이번 문제를 상당히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도 실손24 확산 상황을 직접 챙길 정도로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의에서 공정위 얘기가 나온 것을 (기업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MR 업체는 병·의원 이용자의 진료기록과 건강정보를 전산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실손24가 정착하려면 EMR 업체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EMR 1위 업체로 꼽히는 녹십자 계열 GC메디아이가 전날 실손24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다음 달께 연계율은 52%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당국은 여전히 확산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EMR 부문 참여가 미진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의원급 EMR 시장에서 2·3위권으로 평가되는 이지스헬스케어와 비트컴퓨터는 아직 실손24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약학정보원과 오스템임플란트 및 덴트웹 등 약국·치과 부문 주요 EMR 업체들이 이미 실손24에 참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장 점유율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의 불참이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이지스헬스케어는 의원급 의료기관 6600여 곳을 고객으로 확보해 약 17.7%의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비트컴퓨터도 3600여 곳의 의원급 기관을 고객으로 두고 있어 점유율은 약 9.7%로 평가된다. 두 회사를 합치면 의원급 EMR 시장의 약 27%를 차지하는 셈이다.
실손24에 참여하지 않는 EMR 업체들은 추가 수수료 및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보험업계가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만큼 추가 요구가 과도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애초에 전산 비용도 보험사들이 다 보태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2024년 실손24 구축에 1184억 원을 투입했고 매년 242억 7000만 원의 운영비도 부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