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취약 계층의 재기를 위한 빚 탕감을 주도하면서 이를 떠안은 정부 기관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지난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으로만 1조 4000억 원가량 손실을 냈다. 캠코는 2조 4000억 원을 새출발기금에 출자했는데 빚을 못 갚은 자영업자가 늘면서 시장가치가 1조 35억 원으로 줄었다. 정부 대신 ‘포용 금융’ 부담을 떠안은 캠코가 급속히 부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캠코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12조 73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 급증했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캠코는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 중 월 8000만 원 소득자, 코인 4억 원 소유자 등 상환 능력이 충분한 사람까지 채무 840억 원을 감면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20여 년 전 카드 사태 당시 대출 연체자 지원을 위해 설립한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가 주주 반대를 이유로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도약기금’ 참여를 미루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X(옛 트위터)에 “원시적 약탈 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며 이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국무회의에서도 이를 거론하며 “필요하면 입법을 통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정치권은 포용 금융 확대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포용 금융 확대를 위한 서민금융기금 설치법을 논의에 착수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정부 예산과 민간 은행 출연으로 별도의 기금을 설치해 서민금융의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법이다. 여야는 이날 회의에서 법안 취지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기금의 규모 등에 이견을 보여 좀 더 논의하기로 했다.
빚의 덫에 걸린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조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탕감이 반복되면 시장 원리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버티면 빚을 없애 준다’는 잘못된 신호는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대다수 채무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취약 계층 지원 취지는 살리되 부작용을 보완해 상환 능력에 비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포용 금융의 정교한 설계와 엄정한 집행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