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20%를 넘어섰던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이 다시 10%대로 떨어졌다. 여성 대표성 확대를 목표로 한 제도가 도입되자 빠르게 올랐던 비율이 정권 교체 이후 4년 연속 하락한 것이다. 민간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공공기관의 유리천장은 되레 두꺼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자료를 보면 올 1분기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은 19.9%에 그쳤다. 상임·비상임을 합친 전체 임원 3557명 중 여성은 707명이었다.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은 2022년 22.7%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걸었다. 2023년 21.7%, 2024년 20.8%, 2025년 20.2%로 낮아졌고 올 1분기에는 20% 선마저 깨졌다. 같은 기간 여성 임원 수는 858명에서 707명으로 151명 줄었다.
여성 인력 자체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공공기관 여성 직원은 2022년 15만 5461명에서 올 1분기 16만 4222명으로 5.6% 늘었다. 공공기관 안에서 여성 직원은 늘었지만 기관장·이사·감사 등 의사결정 자리로 올라가는 문은 더 좁아진 셈이다.
민간기업과 비교하면 공공기관의 후퇴는 더 뚜렷하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5%였다. 2019년 3.5%에서 3.0%포인트 올랐다. 민간은 낮은 수준에서나마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공공기관은 과거에 달성했던 목표 수준도 지키지 못했다.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은 문재인 정부 때 빠르게 높아졌다. 당시 정부는 공공 부문 의사결정 직위에 여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2017년 11월 ‘공공 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을 내놨다. 공공기관에는 여성 임원 목표제를 처음 도입하고 2022년까지 임원 여성 비율을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도 정비도 뒤따랐다. 2018년 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양성평등을 위한 임원임명 목표제’가 신설됐고 2019년 7월부터 시행됐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양성평등을 위한 임원임명 목표를 정하고 연차별 목표와 이행 계획을 정부에 제출해야 했다.
효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공공 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 이행 실적과 양성평등 정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계획 수립 당시 11.8%였던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은 2018년 17.9%, 2019년 21.1%, 2020년 22.1%, 2021년 22.5%로 올랐다. 5년도 안 돼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정책의 무게중심은 달라졌다. 기존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은 ‘성별대표성 제고 계획’으로 바뀌었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3차 공공 부문 성별대표성 제고 계획을 마련하면서 기존 여성대표성 제고 계획을 양성평등 관점으로 전환했다. 12개 분야 소관 부처가 자율적으로 목표와 이행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제도는 남았지만 여성 임원 확대를 강하게 밀어 올렸던 동력은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체 임원이 줄어드는 과정에서도 여성에게 감소 폭이 집중됐다. 2022년부터 올 1분기까지 전체 임원은 3779명에서 3557명으로 222명 줄었다. 이 가운데 여성 임원 감소분은 151명으로 전체 감소분의 68.0%에 달했다. 남성 임원은 같은 기간 2921명에서 2850명으로 71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직 성과와 다양성 제고 효과를 검증하고 경영평가와 연계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성 임원 확대 정책이 조직 성과와 다양성 제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검증하고 보완 방향을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정권에 따라 정책 강도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성 임원 비율을 공공기관 평가의 핵심성과지표(KPI)에 넣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