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사무관 A 씨는 9월이 괴롭다.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두고 각 의원실로부터 자료 요청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민감한 정보는 제출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국감장에서 지적받지 않으려면 대부분의 요구 자료를 검토한 뒤 관련 부서의 의견을 달아야 한다. 국감이 다가올수록 요청 자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다반사다.
하지만 올해 9월 정기국회부터는 최소한 재경부에서는 이런 풍경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조정실 주도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기술을 활용해 국감 자료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해당 부서에 배분하는 시스템 도입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재경부 관계자는 4일 “고위공무원단부터 사무관까지 AI 기술 행정에 활용하기 위한 교육을 지속하고 있다”며 “국정감사 자료 요청을 자동 분류해 담당 부서에 연결하는 것이 첫 번째 적용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국감 시즌은 재경부 직원들에게 가장 부담이 큰 시기로 꼽힌다. 의원실로부터 쇄도하는 자료 제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자료 검색과 답변서 작성 등 단순 반복 업무가 주를 이루지만 잘못된 통계가 제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 업무 강도도 높다.
해가 갈수록 의원실의 요구 건수가 급증하면서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2년부터 2025년까지 14차례 국감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 11만 2121건이었던 서류 제출 요구는 2024년 21만 513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피감기관의 자료 제출 거부도 문제지만 일부 의원실의 ‘부처 기강 잡기’식 과도한 자료 요구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노가다 국감’이라는 은어까지 등장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AI 기술을 공무원의 실제 행정 업무에 처음으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챗GPT나 제미나이 등을 활용해 자료를 검색하는 수준을 넘어 AI 에이전트 기술로 국회 요청 자료의 성격과 유형을 분석해 적절한 담당자를 자동으로 매칭하는 방식이다. AI 기술 도입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고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업무 부담을 줄여 정책 기획과 분석 등 다른 핵심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7월 취임 1년을 맞는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AI 전도사’로 이번 프로젝트를 적극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기반 행정을 중심으로 한 ‘AI 정부’ 구현을 위해서는 고위공무원단부터 사무관까지 전 직원이 업무와 연계한 AI 활용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구 경제부총리의 생각이다. 그는 평소 간부들에게 “재경부 인원은 80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 명 한 명이 경제 부처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자질을 보유한 인재들”이라며 “이들이 AI 활용 능력을 갖추는 순간 8000명의 경제 관료가 일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전략과 세법 개정안 편성 작업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기획예산처도 AI 기술을 직원들의 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획처는 지난달 30일부터 정부 부처 최초로 ‘정부 전용 모바일 메신저’를 도입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메신저는 생성형 AI와 문서 뷰어 기능을 탑재해 외부 이동 중에도 메신저로 문서 등 각종 파일을 공유·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