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3일(현지 시간) 공개 석상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공식화한 것은 중동 전쟁 여파로 국내 물가가 본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르면 7월 금리 인상에 나선 후 추가로 한 차례 더 올려 연내 기준금리가 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유 부총재는 당장 석유 최고가격제 등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내 물가가 상당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전쟁에 따라 유가·환율이 동시에 뛰고 있어 통화 긴축으로 선제 대응할 필요가 커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해외 주요 기관들은 우리나라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고 있다. JP모건은 올 3월 1.7%에서 지난달 2.7%로 1%포인트 올렸고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도 기존 2.1%에서 2.9%로 물가 상승률을 0.8%포인트 끌어올렸다.
시장은 특히 유 부총재가 6일 4월 소비자물가동향 발표를 앞두고 금리 인상을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3월 소비물가 상승률은 2.2%에 그쳤지만 4월은 유가 상승분이 본격 반영돼 2% 중후반대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채권 시장 관계자는 “소비자물가가 급등했다는 통계가 나오기 전에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 밖으로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란 전쟁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도 나왔지만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따른 내수 호조로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우리나라 올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영국 리서치 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지난달 말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제시했다. 이는 한 달 전 내놓은 전망치(1.6%)보다 1.1%포인트 높다. JP모건체이스도 최근 3.0%를 제시하며 직전 전망치(2.2%)보다 0.8%포인트 상향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발표된 올 1분기 우리나라 성장률이 1.7%(잠정치)를 유지하면 남은 기간 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평균 0% 수준에 그치더라도 연간 성장률이 2.4~2.5%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는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면서 GDP 갭이 플러스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산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실물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한은이 언제 금리 인상을 단행할지 연내 몇 회 인상을 할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 부총재가 5월 금통위에서 인상 시그널을 보낼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고려해 7월에 인상에 나서고 연내 1회 추가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현 물가 예측 경로상 7월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10월이나 11월에 한 번 더 올려 연내 최종 기준금리는 3% 수준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이달 금통위에서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후 물가 압력이 지속된다면 내수 경기 흐름을 보면서 하반기 한 차례 더 추가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유 부총재의 발언이 시그널 차원일 뿐 실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지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으면 물가는 3~4개월 내 안정될 수 있다”며 “한미 금리 차도 여전히 크기 때문에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동향을 보고 움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