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이 몇 년치 영업이익에 달하니 기업 입장에서는 행정소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밀가루·설탕·전분당 담합 수사에 대해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관련 기업들이 일단은 제품 가격을 내리겠지만 과징금이 위반 행위에 비례하는지는 법원에서 진위를 가리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담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엄정한 제재는 당연하다. 원재료 시장의 불공정 행위는 라면·빵·과자·음료 등 가공식품은 물론 외식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을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당국의 움직임은 기업들의 담합 적발을 넘어 물가를 낮추기 위한 속도전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밀가루 담합 사건에서 조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또 관례를 깨고 심사보고서 발송 단계에서 공식 브리핑까지 진행했다. 그러면서 기업간거래(B2B) 밀가루 시장점유율 88%에 달하는 7개사의 담합 혐의에 대해 5조 8000억 원 규모 매출을 산정하며 최대 20%의 과징금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담합은 잡아야 하지만 사정 당국의 칼끝이 담합의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닌 제품 가격이 오른 산업을 선별적으로 겨누는 쪽으로 이동한다면 이는 시장 질서를 정립하는 정책이라기보다 가격통제 정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민생 물가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망을 넓히면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을 품목은 거의 없다. 실제로 국내 밀가루·전분당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기 직전인 올 1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하지만 곡물(15.7%), 수산물(5.9%), 축산물(4.1%)은 더 많이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마구 돈을 풀어놓고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자 이를 행정 압박으로 찍어 누르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이유로 약 13조 원을, 올해는 고유가 부담 완화를 명목으로 약 10조 원의 재정을 풀었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면 제품 가격표보다 재정과 산업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차기 정부와 다음 세대에게 날아들 청구서를 지금의 물가 안정 성과로 포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