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스포츠토토 하냐? 뭘 그렇게 징하게 챙겨봐.”
밤마다 듀얼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해외 축구 경기를 보는 민태성(46) 씨. 그에게 지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묻는다. 그럴 때마다 민 씨는 호쾌하게 웃으며 답한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냥 축구가 좋아서 보는 거야!”
그에게 축구는 밤을 새워도 피곤함을 잊게 하는 아드레날린의 원천이다. 게임을 해도 축구 게임 ‘위닝 일레븐’을 제일 좋아하고 일상 속 모든 대화가 축구로 통한다. 지금은 9년 차 카페 사장에서 바리스타 겸 창업 어드바이저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심장 한켠엔 언제나 축구가 뛰고 있다.
아버지 손잡고 시작된 축구 사랑…‘붉은악마’ 탄생도 함께
민 씨가 축구에 빠져든 건 어린 시절 아버지 덕분이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찾거나 생중계를 빠짐없이 챙겨보며 자연스레 축구 팬이 됐다. 지금도 그는 이정효 감독을 좋아해 수원삼성 경기를 챙겨보고,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태극전사들의 경기도 빠짐없이 본다.
그렇게 싹튼 축구 사랑이 ‘붉은악마’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건 1997년이었다.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 등 PC통신이 세상을 연결하던 시절, 그는 국가대표팀 응원 모임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즈’(Great Hankuk Supporters Club)에 들어갔다. 전국의 축구 덕후가 모인 이 모임은 같은 해 8월 공모를 통해 ‘붉은악마’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 붉은악마다.
이후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붉은악마 소모임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2001년 민 씨는 붉은악마 서울 지역 소모임 ‘리얼레드’의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그 시절의 응원은 지금 돌아봐도 ‘낭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특별했어요.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로 모여서 같이 운동회도 하고 모임 내에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도 했죠. 낭만 응원단 그 자체였습니다.”
민 씨의 첫 현장 응원은 1998년 3월 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 한일전이었다. 삼일절 당일 일본에 2대 1로 무릎 꿇은 쓰라린 패배였지만, 그날이 그의 ‘붉은악마 인생’의 시작점이 됐다.
목소리 하나로 수만 명을 움직이다…거리 응원 이끈 ‘현장팀장’
붉은악마 초창기 멤버였던 민 씨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리얼레드의 현장팀장과 운영진으로 활동했다. “목소리도 크고 열정도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운영진 선배들이 직접 현장팀장으로 발탁했다.
현장팀장의 역할은 조직적인 길거리 응원을 이끄는 것이다. 붉은악마 본부에서 메인 현장팀장이 경기장을 지휘하면 각 지역 소모임의 현장팀들은 이를 서포트하며 북(탐탐이) 연주, 응원 리딩 등의 역할을 맡는다. 일반 관중들의 응원과 붉은악마의 조직적인 응원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이었다.
2006년에는 붉은악마 메인 현장팀에 들어가 광화문 광장 거리 응원을 이끌었다. 수만 명의 붉은 함성을 하나로 모았던 그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뜨거운 열정은 남들 눈에도 보이기 마련. 그 열정 덕분에 민 씨는 2007년 팬들이 직접 창단한 시민구단 ‘서울 유나이티드’의 메인 현장팀장을 맡게 됐다. 서울 유나이티드가 K3리그에 참가하게 되자, 붉은악마 운영진의 권유로 현장팀장을 맡았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창단 첫 시즌 3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했다. 하지만 팀은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2025년 아쉽게 해체됐다.
민 씨가 붉은악마로서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있다. 바로 경기 후 쓰레기를 줍는 문화다. 그는 “쓰레기 줍는 문화도 붉은악마가 2002년부터 조직적으로 시작한 것”이라며 “인력 배치와 운영 방식을 꼼꼼히 기획해서 실천했는데, 성숙한 응원 문화가 우리 손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2002년은 민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하다. 온 국민을 열광케 했던 사상 최초의 4강 신화. 다시 오기 힘든 기적 같은 순간이었음을 알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이다.
민 씨는 “한 경기 끝나면 다 같이 길거리에 나와서 트럭에 올라타 태극기 흔들면서 여기저기 쏘다녔다”며 “장례식장·교도소·결혼식장 가릴 것 없이 남녀노소가 하나 되어 모르는 사람과 부둥켜안고 울었던 유일한 월드컵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형차 한 대 값”…경기장에 있는 ‘나만의 루틴’
20여 년간 축구에 쏟아부은 비용과 시간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20대 시절 아르바이트비를 털어 다녔던 원정길부터 꾸준히 수집해온 국가대표 유니폼·머플러·저지 등 각종 굿즈들까지. 민 씨는 “지금까지의 지출을 대략 환산하면 국산 중형 자동차값은 족히 나오지 않았겠냐”며 웃어 보였다. 2009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국 대 이란전’을 보러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까지 날아간 것도 순전히 내돈내산이었다.
민 씨에게는 경기장을 찾을 때 지키는 철저한 루틴도 있다. 경기 시작 2~3시간 전 반드시 도착하는 것. 응원 머플러와 유니폼은 필수다.
“경기장에 미리 가서 분위기를 느끼고 응원가 소리를 들어야 해요. 저만의 빌드업인 셈이죠. 그래야 골이 터질 때 도파민이 폭발하거든요. 선수들이 훈련하는 장면부터 눈에 담으며 감정을 쌓아가는 이 준비법은 수십 년째 변함없습니다.”
가장 최근엔 지난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OGFC(맨유 레전드팀)와 수원삼성 레전드의 경기를 찾았다. 역시나 ‘한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전 축구 국가대표 박지성을 직접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대한축구협회, 정신 차려야”…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응원
다가올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민 씨는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기대치가 낮은 월드컵은 처음”이라며 운을 뗐다. “전 세계가 함께하는 축제인 월드컵임에도 국내 팬들이 이토록 싸늘한 시선을 보내게 만든 건 대한축구협회의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민 씨는 “32강이든 16강이든 예선 탈락이든 상관없이 끝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목청껏 응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붉은악마 북중미 원정 응원단 합류 여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설령 원정길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광화문 광장 어디에선가 그의 목소리는 반드시 울려 퍼질 예정이다.
27년간 붉은악마로 살아온 세월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민 씨는 붉은악마 활동이 “실패의 연속이었던 젊은 날의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 준 원동력이었다”고 회상했다. 얄팍했던 열정을 뜨겁게 달궈줬고, 단체 생활 속에서 협력과 리더십을 일깨워줬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준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고백이다.
그에게 응원이란 무엇일까. 민 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응원은 승패를 떠나 결과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축구로 만나 인연을 맺고 축구로 삶을 채우는 ‘축구 덕후’ 민 씨. 그는 오늘도 축생축사(蹴生蹴死)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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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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