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취재하며 어느 때보다 인공지능(AI)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AI가 인간 전문가를 앞질렀다고 해 직접 써보니 납득이 갔다. 시장과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설명은 오히려 사람보다 정확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고객 상담 영역에서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에 탑재된 AI 챗봇은 대화가 안 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화 상담도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에 ‘AI 상담사’를 검색하면 한참 동안 사람을 기다리다 결국 연결이 안 돼 포기했다는 후기가 수두룩하다. 같은 AI인데도 한쪽은 믿음직스럽고, 다른 한쪽은 왜 이렇게 답답할까.
차이는 성능이 아니라 어디에 쓰고 있는지에 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를 내는 자산관리 영역에서는 AI가 강점을 보이지만 고객의 모호한 말과 돌발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 상담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고객이 자주 문의하는 시나리오 중심으로 작동하다 보니 “연봉 6000만 원, 신용점수 870이면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냐”는 등 구체적인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AI를 상담의 영역으로 밀어넣고 있다. 가장 먼저 줄어드는 곳은 콜센터와 영업점이다. 2022년 3627명이었던 4대 은행의 상담원 수는 3년 만에 400명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점도 195개 줄어들면서 인력 감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경영 효율화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불편이다. 화면 앞에서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고객을 도와주거나 금융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의 말을 기다려주는 일은 AI에 맡길 수 없는 사람의 몫이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창구로 오는 고객들은 아무리 대기가 길어도 직원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오는 것”이라며 “직원이 더 줄어들면 결국 고객들 손해”라고 말했다.
좋은 AI와 나쁜 AI의 차이는 기술력에만 있지 않다. 어디에, 왜 쓰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은행의 AI는 사람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기 위한 도구가 아닌 고객을 돕는 기술이 돼야 한다. 수익만을 위한 AI라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신뢰는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