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나들이를 즐기려는 인파가 곳곳에 몰리고 있다. 특히 이번 봄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펫크닉(Pet+Picnic)’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려동물을 맡길 곳을 먼저 찾았다면 이제는 함께 갈 수 있는 숙소와 카페를 검색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동반 숙박 여행 경험률은 2022년 53%를 기록했고 2024년 60.4%로 높아졌다. 호텔업계는 이 흐름에 맞춰 단순한 ‘동반 허용’을 넘어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패키지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21일 여행 업계에 따르면 롯데호텔앤리조트 시그니엘 부산이 운영하는 ‘미 앤 마이 펫’ 패키지의 펫 전용 객실 투숙 건수는 2025년 4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출시 초반에는 이용률이 저조했지만 반려견과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지난해 4분기에는 해당 패키지 예약이 모두 마감됐다는 게 롯데호텔 측의 설명이다.
롯데호텔앤리조트가 운영하는 제주의 프리미엄 리조트 아트빌라스 제주의 반려견 동반 ‘놀멍쉬멍’ 패키지도 2025년 연간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 늘었다. 연박 고객에게는 롯데스카이힐CC 제주에서 반려견과 함께 페어웨이를 걷는 골프 라운드 기회도 제공한다. 최근 드넓은 제주 자연을 배경으로 반려견과 코스를 천천히 걷는 경험 덕에 힐링 여행을 찾는 펫팸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스카이힐CC 제주의 반려견 동반 라운드 이용 건수도 올 1분기 7건에서 11건으로 늘었다. 경남 롯데호텔 김해는 야외 펫 플레이그라운드와 펫 글램핑장을 조성해 반려동물 특화 체험 공간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펫크닉 수요 증가는 객실 소비 패턴의 변화로도 읽힌다.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따르면 올해 반려견 동반 투숙객의 100%가 일반 객실 대신 펫 패키지를 선택했다. 반려견과 함께 투숙할 수 있는 일반 객실도 있지만 전용 어메니티와 세심한 구성을 갖춘 패키지를 택하는 수요가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라운지나 레스토랑으로 이동하기 번거로운 탓에 조식도 객실에서 해결하는 인룸 다이닝(객실 내 식사 서비스) 이용률이 높고 반려견 관련 굿즈와 어메니티 소비로도 이어진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펫 동반 고객은 어메니티 구성이나 전용 객실 같은 경험의 질로 상품을 고른다”며 “단순 동반보다 훨씬 충성도 높은 소비층”이라고 말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레스케이프 호텔의 경우 9층 전체를 펫 전용 객실로 꾸리고 반려동물 피부 케어 브랜드 라퓨클레르 제품과 르크루제 펫 전용 식기, 에어버기 펫 유모차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 용산의 서울드래곤시티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호텔 앤 레지던스 역시 반려견 동반 고객 전용 층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펫 가구 브랜드 ‘나르(Nar)’와 협업해 꾸민 ‘펫룸’에는 반려견 전용 가구와 식기가 갖춰져 있고 반려견 전용 엘리베이터와 야외 산책 공간 ‘더 가든’까지 동선을 세심하게 설계했다.
호텔들은 반려견을 위한 어메니티와 프로그램 고도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시그니엘 부산은 수면 전문 브랜드 시몬스가 국내 침대 업계 최초로 3대 펫 안심인증을 받은 반려동물 전용 매트리스를 올해부터 객실에 들였다. 반려견 이름이 새겨진 전용 케이크와 펫 파자마 등 웰컴 기프트, 스위트룸의 펫 드라이룸까지 갖췄다. 세계 강아지의 날인 3월 23일엔 라퓨클레르, 반려동물 용품 브랜드 리카리카 등 파트너사 체험존을 마련해 투숙객과 반려견이 함께 참여하는 반려견 케어 체험 행사를 열기도 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반려견 동반 프로그램은 하루 단위 웰니스 루틴으로까지 진화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돌아와 피로를 회복하는 일과 전체를 호텔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콘래드 서울은 놀이, 그루밍, 웰니스 케어, 휴식, 미식 등 5단계로 구성해 체크인부터 퇴실까지 반려견의 하루 흐름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2026 펫 메종(Pet Maison)’을 선보이고 있다. 반려동물 전문 케어 제품 브랜드 허레이와 협업한 릴렉싱 케어 키트, 반려견 전용 보양죽, 히노키(편백나무) 탕, 반려견 전용 러닝머신과 짐볼까지 갖춰 보호자보다 반려견의 컨디션을 먼저 고려한 설계가 특징이다.
이처럼 펫크닉이 확산하는 배경에는 제도적인 변화도 한몫했다. 올해 3월부터 식품위생법 시행 규칙 개정으로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이 합법화되면서 도심 나들이 선택지가 한층 넓어진 것이다. 강원 양양 반려견 전용 해수욕장 ‘멍비치’, 포천 한탄강 일대 반려견 동반 트레킹 코스, 순천만국가정원 반려견 무료 돌봄 서비스 등 자연과 도심을 아우르는 펫크닉 거점도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반려동물 시장이 2032년 2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펫팸족에게 꿈처럼 여겨지던 반려견 동반 여행이 이제는 여행 산업의 주력 상품으로 떠오른 셈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반려견과 함께 투숙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업계의 차별화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반려견을 위한 프로그램과 굿즈·웰니스 경험까지 갖춰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됐다”며 “단순 동반 허용을 넘어 반려견의 하루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경쟁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