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도 K팝을 즐겨 듣습니다. 한국을 직접 찾아 K컬처를 경험하고자 하는 영국인들이 늘어난 만큼 지금이 취항 최적기라고 확신했죠.”
최근 방한한 데이브 기어 버진애틀랜틱 최고상업책임자(CCO)는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천~런던 히스로 노선 취항을 계기로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이 노선을 신설하게 된 배경에 대해 “비즈니스 수요를 계산하기에 앞서 문화적 흐름을 먼저 읽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영국에서 서로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에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나 포뮬러1 레이싱 등의 스포츠 경기를 현지에서 직관하기 위해 런던행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유럽 여행이 주요 유적지 및 관광지를 돌아보는 패키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보고 싶은 경기나 가고 싶은 공연을 먼저 정하고 항공권을 끊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영국에서도 K팝·K드라마·K뷰티가 일상을 파고들면서 한국을 찾는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기어 CCO도 유럽 최대 코리아타운으로 꼽히는 런던 남서부 뉴몰든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자주 접해왔다고 한다. 그는 “한국 식당, 슈퍼마켓 등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뉴몰든을 넘어 영국 전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면서 “제 딸도 K팝 팬”이라고 소개했다.
버진애틀랜틱의 코닐 코스터 최고경영자(CEO) 역시 K컬처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어 CCO와 함께 방한한 코스터 CEO는 “K팝과 K뷰티, 영화, 패션이 전 세계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한국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가 먼저 수요를 만들고, 항공사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버진애틀랜틱은 이번 인천 취항을 계기로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2024년 몰디브에 이어 이번에 서울, 10월 푸켓까지 연달아 노선을 여는 방식이다. 기어 CCO는 “뚜렷하고 지속적인 수요가 확인된 곳에만 선별적으로 취항하고 있다”며 “인천~런던 노선은 그 기준을 충분히 충족했다”고 말했다.
여행 수요의 구조적인 변화도 이번 취항의 배경으로 꼽힌다. 패키지 단체여행보다 항공권과 숙박을 개별적으로 구성하는 자유여행이 확산되면서 버진애틀랜틱이 공략할 수 있는 고객층이 한층 넓어졌다고 판단했다.
기어 CCO는 “한국 여행객은 경험 중심으로 소비하고 디지털 활용도가 높으며 몰입형 콘텐츠를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를 공략하기 위해 버진애틀랜틱은 개인화된 여정과 디지털 서비스를 앞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연한 예약 시스템과 끊김 없는 이용 경험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버진애틀랜틱은 자회사 ‘버진애틀랜틱 홀리데이’를 통해 영국 출발 한국·일본 여행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출발하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국 여행 패키지 출시도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기어 CCO는 “영국 내 다양한 여행 경험을 한국 시장에 맞게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파트너십 구축도 본격화하고 있다. 버진애틀랜틱은 창업 당시부터 차별화된 서비스와 프리미엄 경험을 정체성으로 내세워 온 만큼 한국에서도 그에 걸맞은 파트너 발굴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버진애틀랜틱이 지난달 신세계푸드와 협업해 영국 식문화를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테이스트 오브 브리튼(Taste of Britain)’ 푸드 마켓을 공동 개최한 것도 그 일환이다.
기어 CCO는 신세계백화점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쇄빙선 탑승, 사막 프라이빗 캠프와 같은 초고가 럭셔리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 ‘더 비아(THE VIA)’를 출시한 점을 언급하며 “한국 내 프리미엄 로컬 파트너를 계속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스포츠·음악·미식 콘텐츠를 양방향으로 소개하는 협업도 추진 중이다.
기어 CCO는 한국 시장에서 버진애틀랜틱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맞춤형 마케팅에도 적극 나설 방침을 밝혔다. 글래스턴베리로 대표되는 영국 고유의 페스티벌 문화를 한국 여행객들에게 적극 소개해보라는 제언에 그는 “정확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버진애틀랜틱은 5~6월 한국 미디어를 영국으로 초청해 현지 문화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KTO 영국 지사와의 협업도 병행하고 있다.
기어 CCO는 끝으로 “단순한 노선 취항을 넘어 한국과 영국 간 관광 수요를 함께 키워가는 것이 목표”라며 “영국이 한국인에게, 한국이 영국인에게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자리 잡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