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공급망 병목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우회로인 홍해를 통과하는 방안은 자제해왔다. 홍해는 예멘에 주둔하는 친(親)이란 후티 반군의 거점으로 2023년 이후 수십 건의 선박 피격이 발생한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유를 실어 나를 대체 항로가 필요해지자 정부는 6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홍해를 우회로로 활용하는 방안을 공식 의제로 올렸다. 공급망 위기가 국가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셈이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위험을 조금씩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며 “무조건 100% 안전을 위해 조금의 위험이라도 있다고 다 금지하면 국내 원유 공급 문제는 어떻게 하겠나”라고 말했다.
실제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란은 전쟁 이후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허가 절차를 요구하고 통행료 부과 방안까지 검토하면서 사실상 통항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도 13일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선박 통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역봉쇄’ 조치에 나섰다. 선박당 수백만 달러 수준의 비용이 거론되며 운항 부담이 급격히 커졌고 기존 항로 이용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우회 항로 통과 지원과 함께 호르무즈해협 통항 재개도 대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는 14일 보험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선사들의 보험료 부담 경감과 신속한 가입 여건 마련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호르무즈해협 통항 재개 시 신속한 운항을 위해 전쟁위험보험 요율과 가입 절차 개선 필요성이 주요하게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상 보험은 재보험 의존도가 높은 구조여서 전쟁 리스크가 반영될 경우 보험료 급등이나 인수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변수로 꼽힌다. 국내 보험사가 일부를 부담하더라도 상당 부분은 해외 재보험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여서 단기간에 부담을 낮추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재보험은 해외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라 정부가 직접 조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선사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가입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홍해 통과와 별도로 공급망 리스크 대응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선 차량용 요소·요소수와 관련해 일부 기업에서 재고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이달 말 공공 비축분을 방출하기로 했다. 전체 재고는 약 3개월분으로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기업별 보유량 차이가 커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 기업에 대해서는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최대 9개월까지 납부 유예할 수 있도록 해 자금 부담 완화도 추진한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유사의 유동성 부담을 덜어 안정적인 원유 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또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우리 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해 통항 정보 제공과 24시간 기술 지원 체계를 가동하는 한편 관련국과의 협력을 통해 항로 안전성을 높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