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한 암호학 비밀 커뮤니티에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9페이지짜리 글 한 편이 올라왔다. 인터넷 화폐의 오랜 난제였던 ‘이중 지불’ 문제를 해결하며 훗날 시가총액 1조 달러가 넘는 거대한 제국을 탄생시킨 비트코인의 시작이었다. 이후 전 세계 금융의 판도는 급격히 바뀌게 된다.
하지만 시스템의 창시자라는 ‘사토시 나카모토’는 2011년 봄 “프로젝트의 리더십을 넘긴다”는 이메일을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세상의 찬사와 함 초창기에 채굴한 약 110만 개의 비트코인을 차지할 수 있음에도 그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그 지갑 속 막대한 규모의 코인은 단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
신간 ‘미스터 나카모토: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저자가 15년간 집요하게 추적한 심층 탐사 논픽션이다. 살해 협박과 SWAT팀 투입,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소송과 자동차 추격전이 난무하는 광기의 현장 속에서 가상화폐의 기원을 파헤치고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숨 막히는 여정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 미스터리를 한 편의 범죄 스릴러처럼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단순히 소문만 좇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언어적 습관을 분석하는 문체감식 기법, C++ 소스 코드 분석, 그리고 전 세계를 넘나드는 대면 인터뷰를 통해 용의자를 좁혀간다. ‘뉴스위크’ 보도로 곤욕을 치른 도리언 나카모토, 끊임없이 자신이 창시자라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벌인 크레이그 라이트, 비트골드의 창시자 닉 사보, 그리고 최초의 비트코인 수신자이자 사후 냉동 인간이 된 할 피니까지.
‘미스터 나카모토’를 추적하는 과정 자체가 ‘탈(脫)중앙화’라는 비트코인 본질과 그것이 현대 금융에 미치는 파장을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물론 모두가 아는 것처럼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찾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수많은 단서와 추론, 그리고 재반박으로 독자는 ‘불확실성’ 자체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금융이라는 산업의 성격 말이다. 2만 5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