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 전문가들의 절반가량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2월까지만 해도 반도체 수출 회복세에 힘입어 2% 달성 기대가 우세했지만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계기로 경기 인식이 빠르게 악화된 영향이다.
특히 물가와 환율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전망도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이전보다 뚜렷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경제·경영학 교수와 채권시장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 전원이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현재 연 2.5% 수준인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중동 분쟁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과 고물가·고환율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성장률 전망은 한층 어두워졌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1.92%로 직전 2월 조사 당시 평균치인 2.01%에서 0.09%포인트 내려앉았다. 2월에는 응답자의 절반 넘게 2%를 제시하며 ‘2%대 성장’ 기대가 컸지만 이달에는 응답자 절반(10명)이 2% 미만이라고 답했다. 1.8%가 20%(4명)이었고, 1.5%(1명·5%)라고 응답한 전문가도 있었다. 반도체 등 수출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동발 유가 쇼크와 1500원 선에 육박하는 고환율이 물가를 자극하며 민간 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중동 사태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방 압력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성장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 전망치는 두 달 사이 확연하게 뛰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 전망치는 2.63%로 직전 전망치(2.16%)는 물론 한은의 물가 목표치(2%)를 웃돌았다. 박종훈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증가로 성장률은 덜 타격을 입을 수 있어도 높은 환율과 유가가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시각도 비슷한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7%로 대폭 상향 조정한 데 이어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잇따라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IB 8곳의 물가 전망치는 2월 말 평균 2.0%에서 3월 말 2.4%로 한 달 만에 0.4%포인트 상승했다.
이처럼 성장률은 하방 압력을 받고 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한은의 향후 통화 정책에 대해 신중론을 유지하면서도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5월 이후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전문가의 60%(12명)는 ‘인상 전망 없음(동결)’을 선택했지만 추가 인상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30%(6명)가 ‘1회 인상’이라고 답했으며 5%(1명)는 ‘2회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직전 설문 조사에서는 연내 동결 및 내년에나 인상이 가능하다는 예측이 많았는데 전망 흐름이 변한 것이다.
이 같은 금리 인상론의 배경에는 고물가는 물론 1500원 선으로 고착화된 환율이 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 종가가 1500원을 넘어선 거래일수는 이미 10일에 달하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거셌던 2009년(12일) 수준에 육박한다.
이에 전문가들의 환율 전망치도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2월 조사 당시 전문가의 55%(11명)는 올 상반기 환율이 1400~144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번에는 1460~1520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5%였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전쟁 위험에 따른 변동성 확대로 50원가량의 원화 평가절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 전쟁 이후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로는 전문가의 45%(9명)가 물가 상승을 꼽았다. 경기 침체 우려가 20%(4명),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15%(3명)로 뒤를 이었다.
한은의 통화정책 난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의 정도와 지속 기간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정책 당국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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