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0억 달러가량 줄어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 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선 영향이다. 특히 2월 말 기준으로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순위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전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236억 6000만 달러(약 641조 원)로 전월보다 39억 7000만 달러 줄었다. 미국 상호관세 발표로 원·달러 환율이 뛰었던 지난해 4월(-49억 9000만 달러)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외환보유액은 2월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신규 발행 등으로 3개월 만에 반등했지만 증가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란 전쟁에 따른 달러 강세로 기타 통화 외화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들었고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등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도 함께 실행되면서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대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시장 안정화를 위해 외환 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매도해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게 된다. 또 고환율 국면에서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할 때 외환시장에서 환전하지 않고 한은과 맺은 외환 스와프 계약을 통해 달러를 공급받는데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게 된다.
특히 2월 말 1420원대까지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이 미국·이란 전쟁 발발로 지난달 말에는 1530원 수준으로 치솟아 외환보유액 감소 폭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보유액을 자산별로 나눠보면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22억 6000만 달러 감소한 3776억 9000만 달러 수준이다. 예치금은 14억 4000만 달러 감소한 210억 5000만 달러,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은 2억 달러 줄어든 155억 7000만 달러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2월 말 기준(4276억 달러)으로 세계 12위 수준으로 집계됐다. 1월 10위에서 한 달 사이 두 계단 떨어졌다. 한은이 국가별 통계를 집계한 2000년대 이후 10위권 밖으로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8위와 9위로 올라서며 우리나라를 제치고 10위권에 진입했다. 이들 국가는 금값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나라는 세계 금 보유량 3위·4위 국가로 외환보유액 산정 때 금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금 보유액 평가 시 매입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금값 상승이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은 관계자는 “일부 국가는 외환보유액 평가 때 금을 시가로 평가하는데 금값이 올 들어 상승했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순위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절대적 달러 보유액이 많아 당장 위기를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시장 전체가 출렁거리는 극도의 불확실성 장세에서는 달러를 풀어 환율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사실상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웃도는 만큼 최근 감소에도 불구하고 개입 규모 대비 여전히 충분한 수준이어서 당장 적정성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한국이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된 것도 환율 방어에는 호재로 여겨진다. 특히 일본계 투자 자금이 몰려들면서 강력한 외환 유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채권시장 트레이더들의 설명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우수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 세계 기관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 전쟁 변수만 제거되면 환율이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