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로의 300석 남짓한 극장에서 출발한 창작뮤지컬이 세계 공연산업의 심장인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 질문에 보기 드문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2016년 서울에서 초연한 작품은 2024년 11월 뉴욕 벨라스코 극장에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라는 이름으로 입성했다. 지난해 토니상에서는 최우수 뮤지컬상을 비롯해 극본상·음악상·연출상·남우주연상·무대디자인상 등 6관왕에 올랐다.
수상 실적만큼 눈에 띄는 것은 브로드웨이에서의 ‘생존력’이다. 2024년 10월 프리뷰를 시작한 뒤 약 2년이 지난 현재까지 벨라스코 극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까지 102주간 783회 공연됐으며 누적 관객은 74만2910명, 누적 매출은 9837만 달러(약 1380억 원)에 달한다.
최근에도 상당한 규모의 관객이 꾸준히 극장을 찾고 있다. 9월 첫째 주 6899명, 둘째 주 6559명에 이어 셋째 주에는 7226명이 관람하며 객석 점유율 93%를 기록했다. 9월 마지막 주에는 8회 공연에 6128명이 찾아 객석 점유율 79%, 주간 매출 약 68만 달러를 기록했다. 직전 주보다 관객과 매출이 줄었지만 브로드웨이 진출 2년을 앞둔 창작뮤지컬이 장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띈다.
현지 호평의 배경에는 ‘한국에서 온 작품’이라는 국적보다 작품 자체의 독창성이 있다. 영화나 유명 지식재산(IP), 기존 히트곡을 활용한 작품이 적지 않은 브로드웨이에서 참신한 스토리와 음악으로 승부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하면서도 기술의 미래보다 외로움과 사랑,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에 집중한 것도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은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대학로의 작은 창작뮤지컬은 어떻게 브로드웨이 상업극장에서도 통하는 작품이 됐을까.
최근 서울에서 열린 공개특강에서 만난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의 말을 종합하면 비결은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은 지키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바꾸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사람이 작품 개발 과정에서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은 ‘낡은 로봇들의 외로움’이었다. 초기에는 로봇을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올리버와 클레어가 백신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등 지금과 전혀 다른 아이디어도 검토했다. 두 로봇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화분이 움직이며 하트 모양을 만드는 장면도 구상했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그 결에 맞지 않는 아이디어는 과감하게 걷어냈다. 박천휴는 “여러 수정 끝에도 ‘낡은 로봇들이 외롭게 살아간다’는 처음의 설정은 유지했다”며 “옛 주인을 그리워하는 로봇이 재즈를 좋아한다는 설정도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브로드웨이로 가면서 작품을 전달하는 방식은 크게 바꿨다. 한국 초연은 300석 남짓한 대학로 극장에서 이뤄졌지만 브로드웨이 공연장인 벨라스코 극장은 판매 좌석 기준 973석 규모다. 브로드웨이 전체로 보면 아주 큰 극장은 아니지만 국내 초연 극장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크다. 그만큼 더 넓은 공간에서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했다. 박천휴는 이를 가까이에서 봐야 디테일이 살아나는 그림과 멀리 떨어져 봐야 규모가 느껴지는 그림의 차이에 비유했다. 두 사람은 한국판을 ‘독립영화’, 브로드웨이판을 ‘할리우드 영화’에 빗대기도 했다.
공연 시간도 줄였다. 개발 초기 2시간가량이던 작품은 한국 초연에서 약 1시간50분, 브로드웨이에서는 1시간40분으로 압축됐다. 한국판에서 한 배우가 맡던 옛 주인 제임스와 재즈 싱어를 별도의 인물로 분리하는 등 인물과 음악의 역할도 다시 짰다. 한국 공연의 인기 넘버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브로드웨이판에서 빠지고 그 역할을 다른 곡들과 결합한 새로운 넘버가 들어갔다. 단순히 대사를 영어로 옮긴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규모와 관객에 맞춰 작품의 전달 방식을 다시 설계한 것이다.
현지 창작진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기준은 ‘유명세’보다 작품에 대한 이해였다. 브로드웨이 진출이 결정된 뒤 두 사람은 여러 연출가를 만났다. 최종적으로 마이클 아든을 택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그가 LED나 프로젝션에 의존하기보다 그림자와 카펫 같은 아날로그적 장치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이 원했던 따뜻하고 손에 잡힐 듯한 미래 세계와 맞아떨어졌다. 애런슨은 연출가 후보들에게 “이 작품의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세계를 구현하고 싶은지”를 물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맞는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 시도가 늘어나는 지금 ‘어쩌면 해피엔딩’이 보여준 성공 공식은 단순한 ‘현지화’와는 조금 다르다. 작품의 DNA는 끝까지 유지하되 극장 규모와 관객에 맞춰 전달하는 방식에는 과감하게 변화를 줬다. 작은 대학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간 살아남은 비결은 그 단순하지만 절묘한 균형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