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늙크크’라서 잘 몰라.”
학부모 김 모 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자녀와 대화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늙크크’가 문맥상 ‘어른’이나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라고 추론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이가 유튜브 콘텐츠에 많이 노출돼서 그런지 ‘야르(신날 때 쓰는 일종의 감탄사)’나 ‘샤갈(기분나쁠 때 쓰는 일종의 비속어)’과 같은 생소한 단어를 종종 쓰며, 그럴때 마다 일종의 세대차이를 느낀다”며 “반면 독서에 쏟는 시간은 많지 않아 사흘을 ‘4일’로 이해하는 등 문해력은 이전 세대보다 떨어진 것 같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한글날 100돌을 맞은 9일 교육계에 따르면 각종 외래어 유입 및 온라인 콘텐츠 확산 등으로 세대나 관심사 별 사용 단어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 국립국어원이 각종 외래어 등을 쉬운 한글로 ‘다듬은 말’은 이날 기준 1만8320개에 달하며, 포털 사이트 구글에 ‘2026 신조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웹페이지만 200개 이상 노출된다.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용어도 꾸준히 바뀌고 있다. 기성세대는 나이 든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 ‘꼰대’와 같은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영크크(영 크리에이터 크루)’의 반대말인 ‘늙크크’를 주로 사용한다. ‘감다뒤(센스가 많이 떨어졌다)’와 같이 축약어도 많이 쓰이며 구글의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제미나이’에서 유래한 활용한 ‘젬민이(AI에 과하게 의존하는 사람)’ 같은 기술 기반 신조어도 종종 사용된다.
언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대나 집단별 사용 언어의 차이는 인류가 문명을 만든 후 꾸준히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이 문해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청소년의 읽기 영역 점수는 501점으로 3년 전 조사 대비 무려 14점 하락했다. 특히 2006년 관련 조사에서 한국의 읽기 영역 점수가 556점이었다는 점에서 문해력이 20년 새 크게 낮아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같은 문해력 하락은 서울시교육청 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말 초·중·고교생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에 따르면 고1 학생 가운데 ‘기초 미달’에 해당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6.8%포인트(p) 증가한 13.8%로 집계됐다. ‘기초’에 해당하는 2수준 비율 또한 전년 대비 3.2%p 늘어난 16.2%를 기록하는 등 학생들의 문해력이 꾸준히 하락 추세다.
교원들 또한 이 같은 문제를 우려한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강 모 씨는 “수행평가에서 ‘A와 B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각각 서술하시오’라는 지시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종종 있다”며 “문학 작품에 ‘기가 막히다’는 표현이 나오면 맥락을 알지 못해 해당 표현이 ‘좋다’라는 뜻인지 ‘어이가 없다’라는 뜻인지 구별 못하는 사례도 목격된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에서 내주는 독후감 과제를 책은 읽지도 않은 채 ‘챗GPT’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요약본만 제출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 김 모 씨는 “독후감 과제를 내줘도 책 줄거리를 단편적으로 옮겨 적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만 나열할 뿐 해당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 지 등을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이 대다수”라며 “독후감이 문해력을 기르는 연습이 아닌 AI용 ‘프롬프트’ 활용법을 익히는 과제가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기술 변화로 학습 행태나 언어사용 습관이 바뀐 만큼 그에 맞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임동훈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술 발달로 지식 습득 수단도 기존 활자에서 유튜브 등으로 바뀌며 언어 사용 행태 또한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특정 언어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신조어 난립이 의사소통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이지만, 이 같은 현상이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