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이슈와 현상을 짚어봅니다. 그 배경과 흐름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전합니다. <편집자주>
30대 직장인 A씨는 월셋집에 거주한다. 집을 사는 데 들어가는 목돈은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수억원의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하기보다 금융 상품에 투자해 자산을 불리는 게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
A씨에게 월세는 단순히 ‘내 집이 없어서 내는 돈’이 아니다. 투자를 하기 위한 일종의 기회비용인 셈이다. 주거비를 매달 부담하더라도 목돈을 집에 묶어두지 않고 운용 여지를 남겨두려는 선택이다. 당장 집을 사기 위해 생활비를 줄이거나 대출 상환 부담을 떠안기보다 현재의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집값이 이미 크게 오른 데다 투자처도 다양해지면서 청년들의 선택지도 달라지고 있다.
‘집 안 사는 청년’…전략적으로 월셋집 택한다
주식·ETF·코인 등이 대표적인 투자처이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주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보다 앞서서는 비트코인 등 코인 투자로 수억,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얘기들이 회자되면서 청년층 사이에서는 집을 사는 것보다 금융자산에 투자해 자산을 불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도 생겼다.
전략적으로 월세 거주를 택한 청년들은 집 한 채에 자산 대부분을 묶어두기보다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여러 금융 상품에 분산 투자하며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비중을 조정하는 식이다. 필요할 때 일부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본다. 주택을 구입하게 되면 상환해야 할 대출 원리금과 세금, 관리비 등 고정비 부담이 이어진다는 점 역시 고려 대상이다.
물론 이런 선택이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주식과 ETF, 코인은 모두 시장 상황에 따라 손실을 보기 쉽다. 특히 코인의 경우 가격 변동성이 크다. 집을 구매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되면 자산을 불릴 기회도 놓칠 수 있다. 그럼에도 집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산을 유연하게 운용하려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양상이다.
‘내 명의 집’보다 ‘지금 살기 좋은 집’이 먼저
집을 사지 않는 선택이 반드시 투자 목적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내 집보다는 편안한 남의 집에 살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 이들은 매입 가능한 낡고 좁은 집보다, 임차하더라도 더 넓고 쾌적한 집을 선호한다.
오래된 아파트를 무리하게 사기보다, 신축 오피스텔이나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전·월세 주택에 거주하기를 원한다. 특히 직장과의 거리, 신축 여부, 집의 크기, 주변 상권과 생활 편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출퇴근 시간이 다소 늘어나더라도 집의 상태나 주거 환경이 더 낫다면 외곽 지역을 선택하기도 한다.
40대 직장인 B씨는 “집을 산다손 치더라도 어차피 내 집이 아니라 은행 집”이라며 “주차할 공간도 없어 만날 이웃과 얼굴 붉혀야 하고 낡아빠진 ‘내 명의로 된 집’에 사느니 월세를 주더라도 출퇴근 편하고 깔끔한 신축에 사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생활 공간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부동산보단 여행·취미…‘지금의 삶’에 돈 쓴다
자녀가 없거나 자녀 계획이 없는 일부 청년들은 주택 구입에 모든 자산을 투입하기 보다 현재의 삶을 누리는 데 많은 돈을 쓰기도 한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간 지출을 줄이기보다 월세 등으로 주거비를 관리하면서 해외 여행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남는 자금은 금융 자산에 투자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점차 넓은 집을 장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시기가 늦어지고 가족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굳이 주택을 매입하는 데 큰 돈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집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현재의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돈을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경매로 집·상가 산다…레버리지로 부동산 투자
전략적으로 집을 사지 않는 청년들도 있지만 반대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전략적으로 집·상가를 사는 청년들도 있다. 경매 등을 통해 자기자본 투입을 줄이면서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부동산은 단순히 거주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투자 대상에 가깝다.
경매는 일반 매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자기자본과 대출을 조합해 부동산을 매입한 뒤 임대수익을 얻거나, 가격이 오르면 매각해 차익을 기대하는 식이다. 적은 자본으로 더 큰 규모의 자산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금융상품 투자와는 다른 방식의 자산 운용으로 볼 수 있다.
주거용 부동산뿐 아니라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대를 통해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출을 많이 활용할수록 금리와 공실, 부동산 가격 변동에 따른 부담도 커진다. 실제 대출 가능 규모는 소득, 기존 부채, 물건 종류, 지역, 금융기관 심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
집 사서 단기임대…‘사는 집’ → ‘돈 버는 집’
집을 사서 직접 거주하는 대신 단기임대 주택이나 에어비앤비 숙소 형태로 운영하며 수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주택을 매입한 뒤 일부 공간을 자신의 거주 공간과 분리해 임대하거나, 전체를 해외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숙박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유튜브 등 인터넷 상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영상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집은 단순히 보유 자산에 그치지 않는다. 임대료나 숙박료를 통해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수익 자산이다. 매달 임대수익을 얻고, 향후 집값이 오르면 자산 가치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을 적극적인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단기숙박 형태 영업은 주택 종류와 지역, 운영 방식에 따라 관련 법규와 등록·신고 요건이 달라질 수 있다. 공실률과 관리비, 청소비, 플랫폼 수수료 등 운영비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결국 집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숙박 수요와 비용을 감안했을 때 수익 구조가 성립하는지까지 검토해야 하는 투자 방식이다.
청년 자산은 5000만 원대…서울 아파트값은 16억
모든 월세 거주자가 집을 안 사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살 수 없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국무조정실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개인의 평균 자산은 약 5012만 원이었다. 평균 부채는 1637만 원, 취업 청년의 월평균 세전 소득은 266만 원 수준이었다. 이 조사는 전국 17개 시·도의 만 19~34세 청년 1만 509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5000만 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청년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KB부동산의 2026년 9월 전국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6억 2469만 원이었다. 청년 개인의 평균 재산과 단순 비교하면 약 32배에 달한다. 취득세와 이사 비용, 유지비 등 부대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액은 더 커진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로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받더라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계약금과 취득 관련 비용조차도 부담이 된다.
월세·주식·경매 사이…달라진 청년 자산 공식
청년들의 주거 선택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집 살 돈을 주식과 ETF에 투자하기 위해 월세살이를 택한다. 어떤 사람은 더 나은 주거 환경에서 살며 여행과 취미 활동을 즐기기 위해 월세를 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대출을 활용해 경매로 집이나 상가를 사들이며 수익을 기대한다. 한켠에서는 높은 집값과 자기자본의 한계에 부딪혀 월셋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청년층의 주거 선택은 더 이상 소유 여부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집을 사느냐, 사지 않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한정된 소득과 자산을 어디에 배분하느냐다. 주거비를 고정비로 받아들이고 투자 여력을 남길지, 대출을 활용해 부동산 자산을 키울지, 현재의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둘지는 각자의 소득과 자산 규모, 위험 감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집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집은 반드시 가져야 할 목표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큰 돈을 한곳에 묶어두는 결정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익을 내는 투자 수단이다.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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