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이 일정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장사를 퇴출하도록 한 한국거래소 규정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시총이라는 단일 지표만으로 이의신청이나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장사의 절차적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판단이다. 아직 가처분 단계지만 본안 소송 결과에 따라 정부와 거래소가 추진해온 ‘부실기업 신속 퇴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권성수)는 2일 케이엠제약이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거래소가 지난달 14일 내린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이 정지되고 정리매매도 이뤄지지 않는다.
재판부는 시총 기준 미달만으로 이의신청이나 소명 기회를 주지 않고 상장폐지하도록 한 규정과 시총 300억 원 기준의 적용 시기를 2027년 1월에서 올해 7월로 앞당긴 경과조치를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시총 미달 시 상장폐지 요건을 정한 조항과 기준 금액 적용 시기를 앞당긴 부칙 조항이 모두 비례의 원칙에 현저히 어긋나 정의관념에 반하므로 위법·무효”라고 판단했다. 특히 시총 미달이 이의신청이 불가능한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인 점을 지적하며 “거래소가 기준을 대폭 올리면서 의견진술이나 이의신청 기회를 주지 않아 상장사의 절차 참여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강화된 기준을 당초보다 6개월 앞당겨 적용한 데 대해서도 “부실기업 적시 퇴출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따라 이뤄졌다는 추상적 설명 외에 구체적 필요성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업 퇴출이라는 정책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충분한 유예기간과 소명 절차 없이 상장폐지를 앞당길 수는 없다는 취지다.
케이엠제약은 시총이 30거래일 연속 기준에 미달해 7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회복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난달 14일 상장폐지 대상으로 결정됐다.
법원은 이날 코스닥 상장사 주연테크가 거래소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인용해 상장폐지 결정과 정리매매를 중단시켰다. 같은 날 복수 상장사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시총 기준을 활용한 상장폐지 제도 전반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한 변호사는 “시총 지표 하나만으로 정상기업의 상장적격성을 배제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