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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후 32년…최영미를 다시 읽다

27.09.2026 1분 읽기

“물론 나는 알고 있다 / 내가 운동보다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잔치는 끝났다”(‘서른, 잔치는 끝났다’ 중)

최영미 시인은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펴내며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집은 그해에만 50만 부가 판매됐다.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젊은 세대의 정서를 거침없고 직설적인 언어로 대변한 시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첫 시집의 기록적인 성공은 시인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최영미는 2020년에 펴낸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개정증보판에 “내겐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운명이 되어버린 시집을 새로이 세상에 내놓는다”며 “이제야 보인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라고 적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비롯해 ‘선운사에서’ ‘연인’ ‘돼지들에게’ ‘괴물’ 등 최영미의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 ‘헛되이’가 최근 출간됐다. 1992년 문단에 데뷔한 지 35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내는 시선집이다. 시선집에는 그가 지금까지 펴낸 8권의 시집에서 62편의 시를 가려 뽑아 실었다. 시의 편집과 배치는 재일한국인 시인 정해옥이 번역해 올해 5월 일본에서 출간한 최영미 시선집 ‘시를 밝혀 들로 나섰다’를 참고했다. 정 시인은 일본판 시선집의 편역자 후기에서 “최영미의 시는 거의 평이한 언어로 쓰여 있다. 하지만 번역하는 내내 평이한 언어야말로 옮기기 어렵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썼다.

최영미의 시 세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만큼 넓고 깊다. 때로는 연애와 이별 등 일상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별의 정서를 담은 ‘선운사에서’가 대표적이다. “멀리서 웃는 그대여 / 산 넘어 가는 그대여 // 꽃이 / 지는 건 쉬워도 /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선운사에서’ 중)

반면 ‘돼지들에게’나 ‘괴물’ 등의 시에서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을 강하게 드러낸다. 실제로 최영미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시 ‘괴물’을 발표한 뒤 고은 시인과 법적 분쟁을 겪었고, 법원은 최영미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도 그 탐욕스런 돼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늙고 병들어 /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 /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 마지막으로 제발 한번만 달라고……”(‘돼지들에게’ 중)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중략)//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 괴물을 잡아야 하나”(‘괴물’ 중) “내가 칼을 / 다 뽑지도 않았는데 / 그는 쓰러졌다 / 그 스스로 / 무너진 거다”(‘팜므 파탈의 회고’ 중)

최영미는 이번 시선집의 ‘시인의 말’에서 “유리창에 와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름다워 숨이 멈추었다. 그런 찰나의 황홀함이 시 아닐까. 헛되이 너를 사랑했다”고 적었다.

이미출판사,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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