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모든 시민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쉬고 즐기는 것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2026 제18회 ‘서울건축문화제’가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국형걸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겸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투어에서 기획 의도를 이같이 설명했다.
‘어셈블링 서울(Assembling Seoul): 서울의 발견’을 주제로 열리는 올해 문화제는 이달 15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자 약 15m에 달하는 층고 아래 높이 쌓인 검은색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문화제 수상작의 모형과 사진, 인터뷰 영상 등을 하나의 타워 형태로 구성한 전시 공간이다. 구조물 사이로 작품을 살펴보며 이동할 수 있고 한켠에는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산업용 파렛트, 개성 있는 전시장으로 변신
구조물의 재료는 산업 현장에서 물건을 올려놓고 운반할 때 사용하는 ‘파렛트’다. 이번 문화제에는 약 1000여개의 파렛트가 사용됐다. 파렛트를 쌓아 수상작을 타워 형태로 전시하고 사이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파렛트는 전시가 끝나면 다시 산업 현장에서 재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기간 동안 임대해 사용한 뒤 반납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 총감독은 “각각 작품을 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공간 자체를 즐기기로 하는게 목표”라며 “어떻게하면 흥미롭게 할 수 았을까 고민하며 파렛트라는 재료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렴하고 시공성이 좋으면서 친환경적이고, 아이들이 파렛트라는 재료 자체를 흥미롭게 보고 경험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높은 층고에 맞춰 구조물은 높게 세웠으며 검은색 파렛트에 푸른색과 노란색을 포인트로 활용해 입체감을 줬다.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관람객이 각각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와 공간감을 함께 느끼도록 한 것이다.
미로 속에서 만난 서울…사진 23점에 담은 도시의 여러 얼굴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총감독 주제전: 서울의 발견’이 이어진다.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 23점이 파렛트로 만든 미로 형태의 공간에 배치돼 있다.
미로 안에서는 한눈에 모든 사진을 볼 수 없다. 관람객이 벽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제한된 프레임 안에 새로운 서울의 모습이 들어온다. 공간을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서울을 발견하는 경험이 되도록 구성했다.
사진은 신경섭 작가가 촬영했다. 유명 건축물이나 대표적인 도시 풍경만 담은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과 비일상적인 모습, 익숙하고 아름다운 풍경부터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풍경까지 서울의 다양한 층위를 담았다.
국 총감독은 “서울의 특성을 발견하자는 의도로 미로를 만들었다”며 “미로는 위에서 보면 전체가 보이지만 안에서는 제한된 프레임만 보이도록 해 사진에 집중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멋있는 서울만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다”며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 여러 레이어가 혼재돼 있는 게 서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사진에 대한 해석도 관람객의 몫으로 남겼다. 서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각자가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국 총감독은 “시민들이 ‘이건 서울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진, 싫어하는 사진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축전은 어렵고 지루하다?”…시민이 머무는 전시장으로
이번 문화제는 건축을 설명하기 보다는 전시 자체를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건축 작품은 모형과 영상, 패널 등을 통해 보여주되 관람객이 전시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한켠에 조성된 ‘건축문화도서전’ 공간에서는 책을 읽거나 누워서 쉴 수도 있다. 국 총감독은 “오셔서 낮잠을 주무시기도 하는데 전시장이라는 게 와서 시간도 보내고 그냥 쉬어가기도 하는 공간”이라며 “누구나 쉽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건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건축은 실제 건물을 전시장으로 옮겨오기 어려워 작품을 전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 총감독은 “건물을 그대로 전시할 수는 없고 모형이나 영상, 패널을 통해 최대한 간접 경험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며 “작품을 쭉 나열하기보다는 공간 자체를 경험하고 작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참여 프로그램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는 건축상 수상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는 ‘오픈오피스’, 수상 건축가와 함께하는 ‘수상작 투어’, 서울의 건축물과 도시공간을 살펴보는 ‘건축문화투어’ 등이 행사 기간 동안 운영된다. 10월 2일에는 건축가들이 청년 예비건축가들을 만나 대화하는 ‘건축가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