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는 3만4000여명. 이들에게 탈북은 ‘목숨을 거는 일’로 통한다. 탈북 시도를 하다 걸리면 노동교화형 혹은 총살형에 처해질 수 있어서다. 그런데 한 번 마음먹기도 어렵다는 탈북을 두 번이나 감행한 청년이 있다. 지난 6월 에세이 ‘나의 지옥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를 출간한 김강우(31) 씨다.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택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와 어머니가 재회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책 ‘나의 지옥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 中) 2016년 처음 압록강을 건넌 그는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2019년 다시 북한 땅을 밟았다. 탈북, 입북 그리고 재탈북의 과정을 책에 담은 김 씨를 27일 서울 종로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그가 탈북 결심한 이유
1995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김 씨는 학창시절 줄곧 1등을 놓치지 않던 엘리트 소년이었다. 평범했던 그의 유년기는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이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가난이 그의 집을 덮쳤다. 중학교 4학년이었던 김 씨는 돈을 벌기 위해 밤마다 58kg짜리 쇠덩이를 들고 중국까지 나르는 일을 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오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사람은 도대체 왜 사는 걸까?’ 마음속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2011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그 갈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해 8월 김 씨의 아버지는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을 넘자마자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고, 모진 고문 끝에 같은 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아버지의 시신을 이름 모를 야산 언덕바지에 파묻었다. 시신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보안원들에게 붙잡혀 “반동분자” 소리를 들으며 매질을 당했다. 서늘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탈북을 결심한 그는 2016년 고향 친구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기로 했다. “어머니,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 남조선으로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뒤에선 아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 ‘저 어린 것이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길을 가겠다고 하니…’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선 김 씨는 반드시 살아남아 3년 뒤 어머니를 모셔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2016년 5월 압록강을 건넌 김 씨는 그해 10월에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국정원 조사를 마친 후 하나원으로 옮겨진 그는 이듬해 2월 사회로 나와 휴대폰 판매 등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2019년 어머니를 모셔올 돈을 마련한 김 씨는 대한민국 여권과 아이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당초 탈북 브로커를 끼고 중국에서 어머니를 만날 계획이었으나 어머니는 건너오지 못했고, 결국 그는 직접 북한으로 향했다.
“어머니 데려오려고” 지옥으로 돌아가다
입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거기 아래 누구야. 이리 올라오라우!” 압록강을 통해 겨우 북한에 잠입한 김 씨는 경비병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만다. 경비병은 AK 소총으로 김 씨를 위협하며 가방 검사 등 검문을 시작했다. 한국 여권이 발견되면 끝이었다. 죽을 각오로 몸싸움에 임한 김 씨는 손에 잡힌 돌멩이로 경비병의 머리를 내리친 후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내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 김 씨는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약속했잖아요. 자리를 잡으면 꼭 데리러 돌아오겠다고요.” 이튿날 잠에서 깬 김 씨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 씨는 산 농막에 숨어 지내며 중국 로밍을 통해 브로커와 소통했으나, 북한 국경 전역에 특별경계령이 내려지면서 브로커와의 탈북 계획은 무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위부 직원이 어머니 집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보위부에 폭행을 당한 후 끌려가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브로커를 통해 어머니를 탈북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경비병과 몸싸움을 벌였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간 김 씨는 두 번째 탈북에 성공했다. 입북 22일 만이었다.
재탈북 이후 찾아온 기적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조마조마한 하루가 계속됐다. 어머니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곧이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5개월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어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급전이 필요했던 그는 얼떨결에 보이스피싱 송금책이 되어 교도소에도 수감됐다. 10개월간 미결수로 수감돼 있던 김 씨는 재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2020년 9월 12일 교도소에서 나온 김 씨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품에 안았다. 김 씨는 “어머니가 무사히 오지 못했더라면 다시 북한에 갔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바깥은 코로나바이러스로 한창 어수선한 시기였다. 빚을 갚아야 했던 김 씨는 냉난방 회사에 입사해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을 맡았다. 차차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마음 한편에 무언가 피어올랐다. 공부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찾아왔다. 지인의 권유로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김 씨는 자신의 재입북 사연을 알리게 되었는데, 이후 수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응원과 후원을 받게 됐다. 학업을 돕겠다는 후원자도 등장했다. 2022년 1월부터 집중 학습에 들어간 김 씨는 이듬해 국민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고, 어느덧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다. 올 6월엔 에세이 ‘나의 지옥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를 출간하며 어릴 적 꿈꿨던 작가의 꿈도 이뤘다.
북한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하나둘 일궈낸 김 씨는 또 다른 기적을 꿈꾼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싶다는 그는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옆집 마당도 함께 쓸어주는 사람이 되어라.” 후원자의 말씀을 늘 되새기는 김 씨의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 김 씨는 3만4000여 탈북민에게 “죽을 용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만큼 모두 힘을 내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누구든 각자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특별한 사람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