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올해 들어 대출 취급 조건을 70차례 넘게 손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증가 목표에 근접하면 상품 접수를 줄이고 여유가 생기면 다시 문을 여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주택 매매처럼 장기간 자금 계획이 필요한 차주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등 17개 은행이 올 들어 자체적으로 변경한 가계대출 관리 조치는 모두 73건으로 집계됐다. 별도로 공지되지 않은 세부 운용 기준까지 더하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
변경 내용은 대출 공급을 억제하는 조치가 주를 이뤘다. 은행들은 6월 이후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낮추고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을 제한했다. 모집인이나 비대면 채널의 접수를 막거나 특정 주담대 상품의 신규 취급을 중단한 곳도 나왔다. 인터넷은행은 마이너스통장 신규 판매 중단과 한도 축소에 나섰고 지방은행 역시 신용대출 한도와 모기지보험 취급 기준을 강화했다.
반대로 총량 여건이 달라지면 막았던 대출을 다시 여는 사례도 반복됐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닫았던 타행 주담대·신용대출 대환 창구를 연초 다시 열었지만 6월 들어 또 제한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8일 대출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 접수를 멈춘 뒤 27일 다음 달 실행분을 다시 받기 시작했으나 배정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이틀 뒤 재차 접수를 중단했다.
금융권에서는 이같은 ‘대출 절벽’의 배경으로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꼽는다. 금융당국은 2021년 가계대출 급증에 대응해 은행권의 증가율을 전년 말 대비 5~6% 수준에서 관리하는 방식을 본격 도입했다. 이후 관리 강도를 한동안 완화했지만 주택시장과 가계대출이 다시 움직이자 지난해부터 금융회사별 총량 목표를 강화했고, 올해 목표는 당초 1.5% 수준으로 제시됐다. 최근 이를 3% 수준으로 조정했지만 총량 관리 체계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
은행들은 연간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출 추이를 보며 수시로 공급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특히 마이너스통장은 약정 이후 실제 사용 시점과 규모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집단대출 역시 입주 일정에 따라 실행액이 한꺼번에 반영될 수 있어 관리에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담이 차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주택 계약 당시에는 가능했던 대출이 잔금 시점에는 막히거나, 같은 조건의 차주라도 신청 날짜에 따라 대출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간 목표를 맞추려면 어느 시점에는 취급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가능했던 대출이 갑자기 막히면 은행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현장에서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총량 규제가 금융회사의 판단 여지를 지나치게 줄이면 결국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차주의 소득과 신용도, 담보가치, 상환능력 등을 토대로 은행이 대출 한도와 금리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