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예측 시장 플랫폼에서 정치 이슈를 비롯한 각종 미래 사건에 베팅한 누적 거래액이 6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선거와 탄핵·지방선거 등 국내 정치 이벤트에도 수백억 원이 몰리면서 국내에서 충족되지 않는 리스크 거래 수요가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웹3 리서치 업체 타이거리서치와 글로벌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2023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 투자자가 해외 예측 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에서 거래한 누적 거래 대금은 약 63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한국 정치·사회 관련 이벤트 거래액은 약 745억 원으로 전체의 12%를 차지했다.
폴리마켓은 선거와 기준금리, 국제 분쟁, 스포츠 경기 등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결과를 거래하는 블록체인 기반 예측 시장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먼저 업비트·빗썸과 같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달러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매수한 뒤 이를 개인 지갑으로 전송한다. 이후 개인 가상화폐 지갑을 폴리마켓과 연결하면 별도의 은행 계좌나 카드 없이 지갑만으로 예측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거래는 USDC를 이용해 ‘예(YES)’ 또는 ‘아니오(NO)’ 계약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A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YES 계약 가격이 0.35달러일 때 100주를 매수하면 35달러를 투자하는 셈이다. 실제로 A 후보가 당선되면 주당 1달러씩 총 100달러를 받아 65달러의 차익을 얻지만 예측이 빗나가면 투자금 35달러를 모두 잃는다. 계약 가격은 투자자들의 매매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한다. 이는 해당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시장이 얼마나 높게 보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투자자 관심이 가장 집중된 시장은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였다. 해당 시장 거래액은 약 243억 원으로 같은 투자자들이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시장에서 거래한 금액(약 170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진 시점을 예측하는 두 개의 시장에서도 약 217억 원이 거래되며 국내 정치 이슈가 주요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던 시기에는 거래도 급증했다. 탄핵 심판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지난해 3~6월에는 한국 관련 이벤트가 한국 투자자의 월별 거래액 가운데 46~5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활성 투자자의 59~76%가 한국 관련 시장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관심은 지방선거로도 이어졌다. 올해 서울시장 선거 예측 시장에는 한국 투자자 406명이 참여해 1만 1439건을 거래했다. 누적 거래액은 약 27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정치 이벤트가 마무리된 후에도 한국 투자자들의 예측 시장 이용은 계속됐다. 한국 관련 시장의 거래 비중은 1% 이하로 낮아진 2025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도 월간 거래 규모는 3100만~3300만 USDC 수준을 유지했다. 투자 대상도 미국과 이란의 충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인선, 가상화폐 프로젝트 출시 등 글로벌 이슈로 확대됐다.
이처럼 해외 예측 시장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국내 관련 제도는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투자 수요가 형성된 만큼 이를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윤성 타이거리서치 선임연구원은 “정책은 위험을 차단하는 데 머물기보다 해외로 향하는 수요를 국내 매출과 세수·고용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