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이틀 앞둔 17일 오후 ‘제8차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 참가자 80여 명이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허민 국가유산청 청장과 암각화가 소재한 지방정부인 김상욱 울산시장도 함께 했다. 이날은 ‘반구대 암각화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부산 세계유산위원회의 핵심 이슈는 아니지만 세계 문화유산계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보존 우려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중심하천인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중류의 절벽에 있는데 암각화로부터 4㎞ 하류에 댐(사연댐)이 있다. 비가 많이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진다. 댐은 1965년에 만들어졌고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됐다. 공교롭게도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이른바 ‘멍텅구리 댐’이다.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에 건설된 탓이다.
댐의 만수위는 60m인데 댐 수위가 53m가 되면 암각화가 부분적으로 침수되고 57m에 이르면 완전히 잠기는데, 홍수기 침수와 노출이 지난 60여 년 동안 계속됐고 이에 암각화는 현재 상당히 훼손된 상태다. 지난해 암각화가 침수된 날은 37일이나 된다. 해결책은 1965년 이전으로 돌아가 댐을 없애 물을 빼면 된다. 하지만 댐이 없으면 이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받는 울산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이날 암각화를 함께 둘러본 허민 청장은 “암각화 보존에 문제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전 세계 전문가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반구천(반구대)의 암각화: 사람 중심의 포용적 접근을 통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를 주제로 ‘제8차 세계유산 현장관리자 포럼’이 열렸다. 반구대 암각화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조규형 국가유산청 건축유산팀장은 암각화 발견 이후 보존 문제를 놓고 정부와 울산시가 그동안 대립과 협의를 이어간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이동훈 한국수자원공사 부장은 암각화 보호를 위해 사연댐의 운영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복희 울산시 문화유산과장은 “암각화의 보존 관리와 관광 등 활용을 위해서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온 토론자(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 참가자)들도 각국 사례를 소개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에서 온 고고학자 데슬리 가드너 씨는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 주민의 삶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알바니아의 세계유산인 부트린트 유적을 관리해 온 조리다 무호 씨는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반구대 암각화로 자리를 옮겨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최근 장마철에도 다행히 울산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암각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한 번도 암각화가 침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암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동굴처럼 폐쇄된 곳이 아닌, 공개된 곳에 이렇게 큰 암각화가 있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사례다. 불가리아에서 온 마리엘라 인코바 씨는 “불가리아에도 ‘마다라 기수상’ 암각화가 있는데 역시 보존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 사례가 해결법을 논의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중앙정부 차원의 해결안이 나온 상태이기는 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멍텅구리 댐’인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약 800억 원을 들여 너비 15m, 높이 7.3m 크기의 수문 3개를 건설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암각화가 침수되기 전에 물을 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 부족이 우려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지방정부와 협력을 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폭우가 쏟아질 경우 수문이 역할을 제대로 못해 암각화가 침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부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9일 오후 6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인류의 유산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국제회의로 각국이 신청한 유산의 등재 여부를 심의한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다.
본회의 외에 사전 행사로 세계유산 청년 전문가 포럼(13∼21일),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16∼23일)도 부산·경주·수원·울산 등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포럼’도 이런 사전 생사 가운데 하나다.
핵심 프로그램은 세계유산 신규 등재와 보존 관리 현황이다. 올해는 요르단 아카바 해양 보호구역 등 자연유산 7건, 중국 징더전(경덕진) 수공예 도자 산업 유적 등 문화유산 22건, 그리스 올림포스산 광역 지역 등 복합유산 1건, ‘한국의 갯벌’ 등 확대 등재 2건, 탈락된 기등재 유산의 재등재 1건 등 총 33건이 심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태다. .
세계유산위원회의 논의와는 별도로 일반인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도 진행된다.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 마련되는 ‘대한민국관’(20~29일)에서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는 특별 전시와 체험 행사가 운영된다.
이외에도 국립고궁박물관과 부산박물관이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왕실유산을 통해 기록문화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특별전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에 전하노니’(7월 7일~8월 30일, 부산박물관) 등 풍성한 문화예술 행사가 부산 전역에서 펼쳐지며 관람객을 맞는다.
울산=최수문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