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미국 뉴욕 거리 곳곳에 등장한 낙서들. 글귀 끝에는 ‘세이모(SAMO·Same Old Shit·오래된 허튼소리)’라는 서명이 붙어 있었다. 이 공동 필명을 사용한 이는 장 미셸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 두 명의 젊은 거리 예술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바스키아는 세계 미술시장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반면, 알 디아즈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이모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프로젝트였지만, 미디어와 상업성을 대하는 태도가 엇갈리면서 한 사람은 슈퍼스타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무명의 예술가로 남았다.
오늘날 우리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스키아와 디아즈의 사례에서 보듯 성공은 단순히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결과다. 신간 ‘성공의 배신’은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성공을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성공에는 우연의 역할이 적지 않다. 프로 스포츠 선수의 출생 시기, 경연대회 출전 순서, 이름의 첫 글자와 명문대 진학률의 상관관계 등 다양한 연구는 사소해 보이는 조건들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 뒤에는 환경과 출발선, 만남, 시대적 흐름, 그리고 우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꾼다. 저자는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일수록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 자격이 있었고 실패한 사람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지적한다. 출발선의 차이와 특권, 우연의 역할은 지워지고 불평등은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된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를 능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며 오만해지고, 실패한 사람은 구조적 문제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자책하게 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실패조차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소비된다.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의 한 경제학 교수가 공개한 자신의 ‘실패 이력서’는 큰 화제를 모았고, 실패를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의 ‘메타 실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더 잘 실패하자”는 구호 역시 결국 성공만이 우리가 향해야 할 최종 목적지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실함과 도전은 여전히 삶에서 중요한 가치다. 다만 성공을 인간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증명하는 잣대로 삼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제비뽑기에 참여한 사람들에 가깝다. 성공을 지나치게 숭배하지 않고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을 때, 비로소 능력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공정한 사회를 향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1만 9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