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일대 솔라시도.
언덕 위에 서자 검은 태양광 패널이 간척지 위로 길게 펼쳐졌고, 그 너머로는 아직 주인을 기다리는 산업용지가 비어 있었다. 아직은 ‘도시’보다 ‘벌판’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관광·레저 기업도시를 꿈꾸며 출발했던 이 땅은 이제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를 한데 묶은 한국형 녹색전환, 이른바 ‘K-GX’의 시험장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첫 ‘5극 3특’ 현장 방문지로 이곳을 찾은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현장에서 “녹색전환에 향후 10년간 재정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며 “세제 인센티브와 녹색·전환금융,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녹색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솔라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균형발전 전략인 ‘5극 3특 성장동력 픽앤백(Pick&Back)’ 프로젝트의 첫 실험대다. 각 권역별로 초격차 성장엔진을 고르고, 정부가 재정·세제·금융·규제 지원을 묶어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이다. 해남은 재생에너지와 AI 데이터센터, 광주는 AI·자율주행차, 구미는 로봇·피지컬 AI·소재부품장비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솔라시도 전체 면적은 1022만 평이다. 목표 인구는 10만 명, 총사업비는 3조 300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산업단지로 활용되는 부지만 약 200만 평에 달한다. 현장 관계자는 “즉시 착공 가능한 산업용지를 확보하고 있다”며 “AI 데이터센터와 2차전지, 반도체 패키징 등 첨단산업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들어서는 핵심 시설은 국가 AI 컴퓨팅센터다. 삼성SDS와 네이버클라우드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솔라시도를 부지로 선택하면서 사업은 구체화됐다. 총사업비는 2조 원대다. 전력 수요는 40MW에서 시작해 80MW까지 늘어난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만 5000장을 갖춰 국내 AI 연산 자원을 제공하는 대형 인프라로,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솔라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AI 산업의 최대 병목인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풀 수 있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서버와 냉각 설비가 24시간 돌아가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짓기 어려운 것도 전력망 포화와 입지 갈등 때문이다. 해남의 넓은 부지와 태양광 발전단지는 이런 제약을 넘을 대안으로 꼽힌다.
현장 인근에는 이미 98MW 규모 태양광 발전단지가 상업 운전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2028년 1단계로 700MW를 공급하고,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 규모를 5.4G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지역 안의 AI센터와 산업단지에 직접 공급하는 분산형 전력망 모델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속도다. 국가 AI 컴퓨팅센터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만큼 전력망과 용수, 주거 인프라가 같은 속도로 따라붙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2028년 4월까지 154kV 변전소와 송배전 채널을 우선 구축하고, 이후 345kV급 변전소와 송배전망을 추가 확충할 계획이다.
용수 확보도 핵심 과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패키징 산업에는 안정적인 공업용수가 필요하다. 솔라시도 측은 영산호와 영암호 등 주변 수계를 활용해 하루 100만 톤 규모의 스마트 워터 플랜트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사람이 머무는 도시를 만드는 작업도 함께 추진된다. 솔라시도는 국가 AI 컴퓨팅센터 준공에 맞춰 선도 주택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 하반기 1588세대 착공을 시작으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과 해양형 레지던스 등을 포함해 총 2600세대를 공급할 계획이다.
해남의 벌판은 아직 조용했다. 그러나 그 위에는 AI와 재생에너지, 첨단산업을 한꺼번에 올리려는 정부의 구상이 놓이고 있다. 구 부총리는 “수도권에서 멀수록 더 두텁고 과감한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솔라시도가 넓은 땅과 햇빛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녹색전환의 첫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