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멜론 차트 1위’는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 흥행의 상징이었다. 토종 음원 플랫폼 순위가 곧 히트곡의 척도로 통했던 시절 불과 몇년 전이다. 지금 대중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멜론 순위를 예전만큼 절대적인 흥행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K팝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지만, 정작 국내 음원 플랫폼의 위상은 빠르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음악 소비 창구가 유튜브뮤직·스포티파이·쇼츠·글로벌 차트 등으로 분산되면서 국내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13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음악시장 규모는 약 13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전년 대비 8.6% 성장한 수치다. K팝의 글로벌 인기와 공연·음반·영상 콘텐츠 확장이 산업 전체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내 음원 플랫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콘진원 음악산업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음원 시장 이용량은 톱400 기준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2019년 이후 6년 연속 하락세다.
시장 주도권은 이미 글로벌 플랫폼 쪽으로 기울고 있다.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유튜브뮤직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788만 명으로 멜론(688만 명)을 약 100만 명 앞섰다. 2021년 3월 334만 명 수준이던 유튜브뮤직 이용자는 2023년 12월 멜론을 처음 추월한 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자리를 굳히고 있다. 같은 기간 스포티파이 MAU도 20만 명대에서 200만 명대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멜론은 수년째 700만 명 안팎에서 정체됐고 KT지니뮤직(043610) ·플로·바이브·벅스 등 다른 토종 플랫폼도 이용자 감소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는 광고 기반 무료 요금제와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제휴를 앞세워 국내 3위권 사업자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콘진원은 유튜브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강화와 락인 효과가 국내 플랫폼 이용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용자 감소는 곧 수익성 악화로 연결된다. 인기 그룹 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멜론 차트 1위 곡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를 언급하며 “음원 1등을 해도 돈이 많이 들어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발매곡 ‘라타타’가 20위권에 머물렀을 때의 음원 수익이 지금 1위 곡보다 많았던 것 같다고도 했다. 국내 음원 플랫폼 이용량 감소가 아티스트 정산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플랫폼 사업자의 실적에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SK스퀘어(402340) 는 지난해 플로 운영사 드림어스컴퍼니(060570) 의 경영권을 550억 원에 매각했다. 드림어스컴퍼니는 2025년 기준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음원 서비스 부문은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벅스 역시 최근 3년간 매출이 568억 원에서 449억 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지니뮤직은 매년 3000억 원 초반대 매출과 150억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고 있지만 KT(030200) ·LG유플러스(032640) ·CJ(001040) 등 주주사와의 특수관계자 거래 비중이 높아 독자 성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플랫폼의 공세는 가격과 생태계 양쪽에서 이뤄지고 있다. 유튜브뮤직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면 음원 서비스가 사실상 함께 제공되는 번들 전략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스포티파이는 광고 기반 무료 요금제 ‘스포티파이 프리’와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연계를 통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국내 음원 플랫폼의 무제한 스트리밍 정기결제 요금은 월 8000원에서 1만 2000원 수준이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광고 없는 영상 재생과 유튜브뮤직을 포함해 월 1만 4900원이며, 유튜브뮤직을 제외한 프리미엄 라이트 요금제는 월 7900원이다. 두 요금제의 차액으로 보면 유튜브뮤직의 체감 가격은 7000원 수준으로 계산된다.
국내 이용자의 단일 플랫폼 소비 성향도 글로벌 플랫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국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 중 64.5%는 하나의 음원 플랫폼만 이용한다. 유튜브 프리미엄 이용자가 별도로 국내 음원 플랫폼을 추가 구독할 유인이 크지 않은 셈이다. 같은 연구에서 유튜브뮤직 이용자의 47.5%는 유튜브뮤직 때문에 국내 음원 서비스 구독을 중단했다고 응답했다.
콘텐츠 경험에서도 글로벌 플랫폼의 우위가 뚜렷하다. 유튜브뮤직은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한 플랫폼에서 제공하고 스포티파이도 뮤직비디오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플랫폼은 여전히 음원 청취 중심의 서비스 구조에 머물러 있다. 콘진원 조사에서 음악 관련 정보를 얻는 경로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반면 음원사이트는 3위에 그쳤다. 음악 소비가 ‘듣기’에서 ‘보고 공유하는 경험’으로 확장되면서 영상 생태계를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이 이용자 확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이용자들은 음악을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영상, 숏폼, 팬덤 활동과 연계해 소비한다”며 “특히 시청각 경험을 중시하는 K팝 소비자에게 유튜브뮤직과 스포티파이의 영상·추천 생태계는 강력한 비교우위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