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오후 1시 서울 성북구 사찰 길상사.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린 절 입구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교양 수업 과제를 위해 방문한 대학생부터 주말을 맞아 혼자 절을 찾은 직장인, 아이를 둔 주부까지 참가자들의 연령과 사연은 다양했다. 대학생 최유진(23) 씨는 “시험 스트레스가 커서 잠시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쉬어가고 싶어 신청했다”며 “끝날 때는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포교를 맡고 있는 정원 스님은 “예전에는 수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면 최근에는 마음을 치유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 인간관계, 은퇴 이후 우울감처럼 고민은 다르지만 결국 불안과 긴장을 덜어내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템플스테이는 참가자들이 베이지색 사찰복을 입고 법당 안에 둘러앉으면서 시작됐다. 미술치료학을 전공한 최혜정 하람심리상담센터장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짧은 명상 뒤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속 나무를 도화지 위에 그렸다. 활동을 마친 뒤에는 포춘쿠키를 하나씩 열었다. 과자 안에는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깊게 향기가 납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참가자 김진형(22) 씨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위로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과거 웰니스가 운동, 식단 관리, 자기 계발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즉각적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감각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길상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혜림 보살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잠시 묵을 수 있을까요’라는 말”이라며 “지친 마음을 쉬어가기 위해 사찰을 찾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여가 소비로만 보기 어렵다. 학교·직장·지역사회 안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조기에 돌보고 회복을 돕는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을 달랠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이나 치료의 문턱을 넘기 전, 혹은 그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찰·향·차·명상 같은 저강도 심리 케어가 대체 통로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식물·향·차 등을 결합한 체험형 웰니스 콘텐츠도 늘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의 도심 사찰 홍대선원에서는 ‘식물약방 워크숍’이 열렸다. 참가자들 앞에는 작은 갈색 아로마오일 병과 허브차가 놓였다. 참가자들은 레몬·라벤더·페퍼민트·캐모마일 등 향을 하나씩 맡으며 자신만의 롤온을 만들었다. 강윤화 식물약방&루나스에코라이프 대표는 식물별 특징을 설명했고 참가자들은 손등에 오일을 떨어뜨린 뒤 천천히 향을 맡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10여 년간 아로마테라피 등 자연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강 대표는 “식물이 지닌 치유의 가치를 살펴보고 허브 향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긴장을 완화하고 감정을 돌보려는 셀프 심리 케어 콘텐츠는 온라인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마음의 회복이 개인의 소비 영역으로 편입되는 ‘리커버리노믹스(Recovery+Economics)’ 흐름으로 분석한다. 다만 개인 중심의 심리 케어가 확산하는 만큼 이를 사회적 돌봄과 어떻게 연결할지는 과제로 꼽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경쟁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안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찾게 된다”며 “회복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함께 돌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