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디지털자산 시장은 더 이상 실험 단계가 아닙니다. 예금토큰과 전자화폐(e머니), 밧화 스테이블코인을 하나의 온체인 정산 체계 안으로 연결할 계획입니다.”
20일 태국 방콕 아이콘시암에서 열린 ‘동남아시아블록체인위크(SEABW) 2026’에서 붓리 방시리룽루앙 태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디지털자산정책부 국장은 “가상화폐 상장지수펀드(ETF)와 선물 상품을 기존 자본시장 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증권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태국은 2024년 기관투자가와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 연내 알트코인 ETF 확대 방안도 검토 중이다. 태국선물거래소(TFEX)를 통한 가상화폐 선물 거래 허용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밧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사업 역시 샌드박스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일본도 제도 정비에 나섰다. 일본 금융청(FSA)은 다음 달 1일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한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자금결제법상 전자결제수단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일본 사업자들이 해외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와 송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거래소 규제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조차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6·3 지방선거 이후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입법과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뿐 아니라 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격차도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날 행사 현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RWA), 온체인 결제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이어졌다. 관광객 QR 결제와 기관 간 정산, 사모대출 토큰화, 디지털 금, 지식재산권(IP) 기반 자산 유동화,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결제 등 다양한 활용 사례도 소개됐다. 동남아 금융권에서 가상화폐가 단순 투자 자산을 넘어 실제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을 찾은 김호진 샤드랩 대표는 “방콕은 웹3의 핵심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태국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웹3와 블록체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SEC는 디지털 증권과 스테이블코인, 전자화폐를 하나의 온체인 정산 구조 안에서 연결하는 모델을 추진 중이다. 투자자가 밧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나 전자화폐로 디지털 증권 청약 대금을 납부하면 이후 증권 토큰이 투자자 지갑으로 배분되고 최종 정산까지 블록체인상에서 이뤄지는 방식이다.
붓리 국장은 “태국은 디지털 증권과 스테이블코인·전자화폐를 자본시장 인프라 안으로 결합하는 온체인 정산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며 “실시간 정산, 프로세스 자동화, 유동성 확대, 데이터 투명성 확보가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태국의 토큰화 실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태국 SEC는 현재까지 부동산과 영화, 탄소 크레디트 기반 프로젝트 등 총 6건의 가상화폐공개(ICO)를 승인했다. 누적 조달 규모는 2억 6300만 달러(약 3961억 원)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금 기반 토큰 프로젝트도 심사 중이다.
행사장에서는 태국의 높은 금 소비 문화를 반영한 ‘디지털 골드’ 세션에도 관람객이 몰렸다. 최근 밧화 변동성과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토큰화 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광 산업과 연결된 스테이블코인 활용 사례도 공개됐다. 타나왓 수툰티보라쿤 비타자 타일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외국인 관광객이 스테이블코인을 입금하면 이를 밧화 기반 전자화폐로 전환해 QR 결제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투어리스트디지페이’ 서비스를 소개했다.
타나왓 CEO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유동성 흐름”이라며 “관광 결제를 시작으로 향후 송금, 장외거래(OTC), 기관 간 정산 영역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콕이 세계 최대 관광 도시 중 하나라는 점도 스테이블코인 확산 가능성을 키우는 배경으로 꼽힌다. 약 150만 명 수준의 외국인 거주자까지 고려하면 글로벌 결제와 송금 수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 “방콕이 동남아 웹3 핵심 도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태국이 디지털자산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유사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정산 프로젝트 ‘프로젝트 남산’을 소개한 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는 “정부와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관광 결제가 아니라 기업간거래(B2B) 크로스보더(국가 간) 정산 및 청산”이라며 “스테이블코인과 온체인 결제 체계가 기존의 비효율적인 국제 송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AI와 블록체인 결합이 가져올 미래 금융 구조에 대한 전망도 나왔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앞으로 인터넷의 주된 사용자는 인간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며 “기계들이 스스로 결제하고 거래하는 ‘에이전트 경제(A2A·Agent to Agent)’ 시대가 열리면 스테이블코인, 온체인 결제, 분산신원인증(DID) 인프라가 금융의 핵심 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존의 은행 송금 중심 금융 구조가 API 기반의 온체인 금융 구조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