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첫 8000선을 넘어서며 증시 과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노후 대비 자금인 퇴직연금까지 주식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어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증권 등 5대 증권사의 올해 1분기 퇴직연금(DB·DC·IRP) 적립금 합산액은 107조956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7.3% 불어난 규모다.
적립금 팽창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자금 흐름의 성격 변화다. 사측이 운용을 맡아 원리금 보장 상품 위주로 굴리는 DB(확정급여)형 적립금은 1년 새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가입자가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DC(확정기여)형은 같은 기간 56% 폭증했다. 퇴직연금의 운용 기조가 원금 보전에서 적극적 수익 추구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금이 집중되는 투자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른바 ‘삼전닉스’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전망이 밝아지면서 연금 계좌를 통한 매수세가 두 종목에 몰리는 양상이다.
두 종목을 편입한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도 줄을 잇고 있다. 채권혼합형이나 커버드콜 구조 ETF 가운데 일부는 퇴직연금 규정상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위험자산 투자 한도(70%)와 무관하게 연금 자산 전액을 배분할 수 있어 자금 유입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고수익 사례가 알려지며 투자 심리에 불을 붙이고 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에 11억원가량을 투입한 은퇴 고객이 올해 자산 규모 180억원대를 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 투자로 약 96억원 수익을 거둔 일본인 투자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글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해당 투자자는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연 2~3%대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는 물가 상승분조차 방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은퇴 세대 사이에서도 주식을 통한 자산 증식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AI 업계 종사자들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 확대를 근거로 단기 변동성보다 산업 전체의 성장 궤적에 베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반도체 대표주라 하더라도 주식의 본질은 고위험 자산이다. 노후 생활 자금을 특정 종목군에 집중 배분하는 전략은 하락장 전환 시 회복 불가능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강세장이 이어질수록 장기 보유가 곧 정답이라는 서사가 힘을 얻지만, 퇴직연금은 은퇴 후 생활 안정을 위한 재원이라는 본래 목적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시각이 나온다. 수익률에 이끌린 쏠림 투자는 시장 조정기에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