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이 올 1분기에만 139% 급증하며 한국 경제가 3% 성장률을 넘보고 있다. 반면 경제의 기초 체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은 내년 1.57%까지 낮아져 2027년까지 15년 연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돼 ‘반도체 착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5%로 0.7%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1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1.7%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크게 웃돈 데다 반도체와 전기전자 중심의 수출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반영했다.
NH투자증권도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5%로 올렸다. 수출 증가율 전망치는 기존 12%에서 30%로 대폭 상향했다. NH투자증권은 1분기 한국 경제가 전년 대비 3.6% 성장했다며 성장률 수치와 내용 모두 양호했다고 평가했다. 1분기 성장 기여도는 순수출 1.1%포인트·설비투자 0.4%포인트·건설투자 0.3%포인트·민간소비 0.2%포인트로 주요 부문이 모두 플러스를 기록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높였다. JP모건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3.0%로 올렸고 씨티도 2.2%에서 2.9%로 상향했다. 골드만삭스도 2.5%를 제시했다. 정부가 올해 초 내놓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 2.0%를 웃도는 수준이다.
전망치 상향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반도체 수요 증가가 수출과 설비투자를 동시에 밀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통관 기준 무역수지가 2098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경상수지는 260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 반등에도 꺼지는 기초체력…2%대 잠재성장률은 옛말
문제는 단기 성장률 개선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71%에서 내년 1.57%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활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OECD 전망대로라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63%를 정점으로 2027년까지 15년 연속 하락하게 된다. 지난해 2% 선을 밑돈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반등 계기를 찾지 못하는 셈이다. 한국은행도 국내 잠재성장률이 2021~2023년 2.1%에서 2024~2026년 2.0%로 낮아지고 2025~2029년에는 1.8%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한국은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1997~2007년만 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5% 안팎으로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OECD 평균 수준인 1%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국내외 기관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잠재성장률을 지난해 1.8%에서 올해 1.6%로 낮춰 봤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도 올 1월 한국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잠재성장률 2%대가 더 이상 당연한 기준선이 아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배경에는 노동·자본·생산성 약화가 함께 놓여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노동 투입이 줄고 건설투자 부진과 제조업 수익성 악화로 자본 축적도 둔화되고 있다. 서비스업 생산성 정체와 반도체 중심의 산업 쏠림도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도 잠재성장률 하락을 핵심 경제 과제로 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잠재성장률은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며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반등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AI·녹색 전환과 방산·바이오·K컬처 등 신성장 산업 육성을 담은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6월 마련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