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서경제(34·가명) 씨는 3년째 봄만 되면 무기력감에 시달린다. 주체할 수 없이 피곤한 데도 마음이 어지러워 잠들기가 어렵다. 업무 효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 매사에 흥미와 의욕이 떨어져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진다. 서 씨는 “날씨는 화창한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와 괴롭다”라며 “입맛이 없어 한 달 새 체중이 3㎏이나 빠졌다”고 토로했다.
봄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겐 잔인한 계절이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국가정신건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1만 2906명 중 3488명(27%)이 3~5월 사이에 몰려 있다. 특히 4월은 연중 가장 많은 119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공통으로 관찰된다. 의학계에서는 봄철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을 일컬어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부른다.
얼핏 생각해 보면 해가 빨리 지고 외부 활동이 적은 겨울철에 더 우울하고 자살률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봄철 자살률이 겨울철보다 20~30%가량 더 높다. 정확한 원인은 연구 중이지만 일조량 증가, 미세먼지 같은 계절적 요인과 더불어 새 학기, 졸업, 입학, 인사이동 등 사회적인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봄이 되면 일조량이 급격히 늘고 기온이 치솟는다. 달라진 환경이 뇌의 생물학적 시계에 영향을 주고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해 감정 기복도 심해지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거나 감정의 진폭이 큰 20~30대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날씨는 화창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잘사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우울감을 키울 수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20대 청년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에 걸쳐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2013년 약 59만 명에서 2022년 약 100만 명으로 10년 새 2배 가까이 뛰었다. 그중에서도 20~30대 청년 우울증 환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어느 정도 우울감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울감(Melancholy)과 우울증(Depression)은 엄연히 다르다. 우울감은 일상에서 자연스레 생길 수 있는 부정적 감정으로, 일시적이고 단순한 상태를 말한다. 반면 우울증은 기분의 문제를 넘어 신체 활동과 생각, 사회생활 등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으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무기력, 의욕 저하,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등이 나타나 일상을 방해하기 시작했다면 우울증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수면, 식욕, 체중의 변화 또는 통증, 공황 증상 등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된다면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매년 특정한 기간에 우울증 의심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일 가능성도 있다. 전체 우울증의 약 11%를 차지하는 계절성 우울증은 증상 발생 시기에 따라 신체 증상이 달라진다. 겨울에 찾아오는 우울증이 에너지가 바닥나고 잠이 쏟아지는 ‘동면’ 상태라면 봄철 우울증은 그 반대다. 기분은 가라앉아 있는데 몸은 각성된 ‘초조한 우울’ 상태에 가깝다. 불안, 초조, 안절부절못함이 더 두드러질 수 있으며 불면증과 식욕 부진이 함께 찾아와 체중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계절성 우울증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면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한 신체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울증과 밀접하게 연관된 수면 관리가 핵심이다. 불면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전문가에게 점검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는 잘못된 수면 습관과 인식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기 도입으로 인지행동치료의 접근성이 한층 높아졌다. 수면제는 장기 복용 시 내성, 의존성, 인지기능 저하 가능성이 있어 제한적으로 쓰인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항우울제에 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식사 시간이나 취침 전에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카페인과 음주를 줄이는 것도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