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에서 클래식 음악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단연 체코의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의 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 중 제2곡 ‘몰다우(Vltava)’일 것이다.
이 곡은 보헤미아 남부 숲에서 발원한 두 개의 작은 샘물이 모여 거대한 강을 이루고, 프라하 시내를 관통해 흘러가는 과정을 음악으로 정교하게 묘사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엇갈리며 연주하는 도입부는 차가운 얼음이 녹아 흐르는 시냇물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 선명하다. 이어 숲속 사냥꾼의 호른 소리, 농부들의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체코 전통 무곡 ‘폴카’ 리듬, 달빛 아래 물의 요정들이 추는 춤을 묘사한 현악기와 하프의 선율이 차례로 등장한다. 관현악법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생생한 물의 교향곡이 철저한 ‘침묵’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스메타나는 50세이던 1874년 10월, 지병의 합병증으로 양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결국 지휘자 겸 프라하 가극장 예술감독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음악가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인 그해 11월 20일, 그는 오직 머릿속의 음표에만 의지해 ‘몰다우’ 작곡에 착수했고 불과 19일 만인 12월 8일에 곡을 완성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교향곡 9번 ‘합창’을 써 내려간 것에 비견되는 위대한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스메타나는 독일어 중심의 문화 속에서 체코 고유의 민족음악을 정립하고자 평생을 바쳤다.
‘몰다우’를 포함해 총 6곡으로 구성된 교향시 ‘나의 조국’은 억눌린 체코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상징이 됐다. 오늘날에도 매년 스메타나의 기일인 5월 12일에 개막하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는 항상 ‘나의 조국’ 전곡 연주로 축제의 문을 연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족의 얼을 담아낸 스메타나의 ‘몰다우’는 단순한 자연 묘사곡을 넘어선다. 겨울이 서서히 물러나고, 봄이 조용히 깨어나는 요즘, 이 곡을 꼭 한번 들어 보길 권한다.
12분 남짓한 연주 시간 동안,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의 웅장한 생명력이 귓가를 넘어 가슴을 때릴 것이다.
